브린니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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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장 1절~4절) 산상수훈 설교를 마치신.. 2020. 6. 25.
트라우마를 말하다 트라우마를 말하다 A는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환자들을 상담한 결과를 정리한 것들이었다. A는 외과 과장직을 그만 두고 상담실로 자리를 옮긴 지 1년쯤 되었다. 외과든 내과든 흉부외과든 주치의가 어떤 환자에 대해 정신과 상담을 병행하기를 원하는 경우 환자들을 상담실로 보내 A와 상담을 갖게 한다. 보다 원활한 진료를 위해서인데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올바로 인지하고 치료과정에 적극 협조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요즘 A는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집중 상담하고 있었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 어린 시절은 인격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인격이 온전히 형성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하는 것이 바로 트라우마다. 트라우마란 인생의 어느 한때 큰 사고나.. 2020. 6. 25.
[창작 시] 봄꽃 봄꽃 용곡리 마을 개천을 따라 삼월 십오일 산수유 첫 봄 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잘못 접어든 행정리 매화 세 그루 또 봄 꽃 입추 지나서도 쌀쌀한 바람이 봄을 막아서는데 문득 꽃들, 사람 틈으로 숨어들었다. 당신과 나 사이 봄, 꽃 2020. 6. 25.
파블로 네루다 <난 내 이름을 모른다> 난 내 이름을 모른다 언제까지 이 나를, 나는 모두에게 묻곤 했었지, 혼잣말처럼, 지치거든, 사람이 항상 같은 사람이 된다는 거, 이름도, 숫자도 같은 잊혀진 시계처럼, 도구처럼 다시 늘 침묵만 새로운 칼 손자루처럼 손에 닳아진. 똑-같다는 것은 죽음이 쌓이고 있다는 것, 결국 쉬는 거지 이 무릎과 핏줄만 쉬는 것이 아니라 이 우리의 이름도 하도 달고 다녀서, 하도 끌려 다녀서 불쌍한 병정처럼 내뱉어진 신세 흙과 전쟁 사이 반쯤 죽어서. 난 기억하지, 그 언젠가 내 이름 첫 세 글자를 잃어버렸을 때 말이야 그 말은 누구 말일까 내 말, 아니면 내 조상의 말? 확실한 건 난 남의 빚을 지고 살기 싫었어 그래 난 날 새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지 : 성도 새로 주고, 이름도 새로 달고 그리고 이 내 스스로 .. 2020. 6. 25.
한강 <몇 개의 이야기 12> 몇 개의 이야기 12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한강 【산책】 도대체 어떤 슬픔이기에 물기 없이 단단한 것일까? 도대체 어떤 슬픔이기에 어떤 칼로도 깎이지 않는 것일까? 대개 슬픔이라고 하면 눈물을 떠올리고, 물기가 많고, 축축한 느낌인데 이 시의 슬픔은 빠짝 마르고, 단단하다. 어쩌면 마음속에 돌이 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이라는 이름의 돌.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돌. 외과 수술을 해서 심장을 가르고 돌을 수술용 칼로 깎고 자른다. 그러나 이 단단한 슬픔의 돌은 칼날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물도 없는 슬픔, 도대체 이 슬픔은 어디서 온 것일까. 만약 이 슬픔이 없어지려면 몇 년이 걸릴까. 수십 년 혹은 평생! 마음속에 슬픔이, 지워지.. 2020. 6. 25.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이 말씀은 흔히 예수님의 황금률이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최고의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계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마이너 신학자와 시골에서 노인요양원을 경영하고 있는 목사, 신학대학 은퇴 교수, 교회 중직으로 오래 봉사해온 사람들, 시골 마을에서 공동체를 꾸려가며 살아가는 신앙인 등 여러 다.. 2020. 6. 24.
[창작 시] 청혼 청혼 빨간 장미로 가득 채운 케이크 상자 서로를 묶는 싸구려 은팔찌 가난한 청년의 프로포즈 꽃을 먹을 수 없다 가난을 먹을 수도 상처를, 빛나는 연애를, 어린 시절이나 봄눈을 먹을 수도 주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꽃보다 밥이 아름다운가 매일 당신의 밥상을 채우고 조금, 남았으면 2020. 6. 24.
파블로 네루다 <산보> 산보 때때로 사람 되기가 힘들다는 걸 느낀다. 때때로 양복점이나 영화관에 들어가 풀죽은 자신을 발견한다. 솜뭉치로 만든 백조처럼 어쩔 수 없이 잿더미와 원시밖에 없는 물속을 헤엄치는. 이발관의 냄새는 날 소리쳐 울게 한다. 내가 바라는 건 돌이나 양털의 휴식, 건물들이니 정원이니, 상점들이니 안경이니, 승강기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때로 나는 내 발이니 손톱이 싫을 때가 있다. 내 머리칼이며 나의 그림자가 지겨울 때가 있다. 때때로 사람 되는 것이 지겨울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그건 통쾌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백합꽃 한 송이를 꺾어 공증인 따위를 놀라게 해준다든지 귀로 때려서 수녀 하나쯤 죽여 놓는다든지 하는 거. 그건 아름다울 수도 있다. 가령 파란 칼을 들고 길에 나가 추워 죽을 지경이 될.. 2020. 6. 24.
김기택 <틈> 틈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숨 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 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 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온 것인가 그 느리고 질긴 힘은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 다리 없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든 천역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 2020.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