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몇 개의 이야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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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한강 <몇 개의 이야기 12>

by 브린니 2020. 6. 25.

몇 개의 이야기 12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한강

 

 

【산책】

도대체 어떤 슬픔이기에 물기 없이 단단한 것일까?

도대체 어떤 슬픔이기에 어떤 칼로도 깎이지 않는 것일까?

 

대개 슬픔이라고 하면 눈물을 떠올리고, 물기가 많고, 축축한 느낌인데 이 시의 슬픔은 빠짝 마르고, 단단하다.

어쩌면 마음속에 돌이 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이라는 이름의 돌.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돌.

외과 수술을 해서 심장을 가르고 돌을 수술용 칼로 깎고 자른다.

그러나 이 단단한 슬픔의 돌은 칼날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물도 없는 슬픔, 도대체 이 슬픔은 어디서 온 것일까.

만약 이 슬픔이 없어지려면 몇 년이 걸릴까.

수십 년 혹은 평생!

 

마음속에 슬픔이, 지워지지도 깨지지도 않는 슬픔이 있으면 인생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머니들이 말하는 한恨이 되는 것일까. 화병이 되는 것일까. 불이 되는 것일까.

불이 되어 모든 물기를 다 태우고, 말라버리게 하는 것일까.

 

이런 슬픔을 우울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죽음을 부르는 우울.

 

요즘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가 완치된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치 전과자를 보듯 슬슬 피하고 꺼린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 옆에 앉을 수 없고, 사람들 사이에 낄 수도 없는 상황.

안절부절. 어디에도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

 

블루. 푸른. 이렇게 멋진 단어가 우울로 번역되다니.

 

아무튼 어떤 종류의 슬픔이 내게 온다면 어떻게 할까.

내게 남아 굳고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눈물도 자비도 없이 나를 괴롭힐 때

어떻게 할까.

 

자리에 앉아 고민하지 말고 일어서자.

집을 나서자.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자.

빈 공터에 멍하니 서서 숨을 크게 쉬어보자.

먼 거리를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오자.

 

몇 걸음, 몇 시간, 피곤할 때까지 걸어보자.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어쩌면 슬픔도 빠져나갈지 누가 알겠는가.

또 어쩌면,

내가 없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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