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하 <체육 입문>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이민하 <체육 입문>

by 브린니 2020. 6. 26.

체육 입문

 

 

한 사람이 공놀이를 한다

공은 공중을 돌아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공이 바닥에 닿기 전에 발은 움직인다

다시 머리 위로 솟구칠 때

구부러진 발등과 이마는 키스처럼 가깝고

 

두 사람이 공놀이를 한다

공은 두 손에서 뻗어 가슴을 향해 파고든다

공중에 떠 있는 눈은 온몸을 잡아당기고

공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두 사람은 점점 멀어진다

공이 덤불에 처박혀 달걀처럼 깨질 때

공을 주우러 간 그림자는 기차처럼 길고

 

두 손을 털고 사람들이 떠난 길 위에

수만 갈래 힘줄을 뻗는 공은 지구보다 넓고

하늘이 한 뼘 더 두꺼워진 다음 날

낯선 공이 떠도는 공터에 모여

 

세 사람이 공놀이를 한다

공은 공중으로 솟구쳐 공중으로 나아간다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방향을 잡고

공은 새가 된다

한 사람에게 날아가지만 세 사람의 심장이 뛴다

두 사람이 공을 주고받을 때

망을 보는 한 사람은 비밀처럼 뜨겁고

 

                                                     ―이민하

 

【산책】

공을 들고 산책을 나서자.

체육공원으로 가기엔 스포츠에 자신이 없고, 숲이 많은 공원은 공을 튀길 수 없고,

어디 공터가 없을까.

 

예전엔 마을 구석진 곳엔 공터가 하나씩 있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 건물이 생기고, 도로와 거리가 정지 작업이 잘 돼

비어 있는 땅이 별로 없다.

 

학교 운동장으로 가야 할까.

아무튼 공을 들고 나왔으니 땅에 튀기든 공중에 날리든

가족들과 공을 주고받거나 이웃들과 공놀이 게임을 할 수 있을까.

 

이민하의 시 <체육 입문>에서는

처음엔 혼자,

두 번짼 두 사람이,

세 번째는 세 사람이 공놀이를 한다.

 

혼자 공놀이하는 사람은 발등과 이마의 키스로 끝나고,

두 사람이 공놀이할 때는 공이 터져 버리고 공을 주으러 간 사람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세 사람이 공놀이 하는데 공중으로 날아간 공은 새가 된다.

새가 한 사람에게 날아들면 두 사람의 가슴이 뛴다.

두 사람이 공을 주고받으면 한 사람은 망을 보는 사람처럼 두근거린다.

비밀처럼 뜨겁다.

 

이 시의 마지막은 마치 아슬아슬한 연애의 삼각관계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이 사랑을 주고받으면 지켜보는 한 사람의 마음이 뜨거워진다. 비밀처럼.

공은 새가 되고, 사랑이 된다.

 

공놀이를 하면 또 다른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공의 매력은 다시 튀어 오르는 것이다.

탄력!

그것이 공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리고 둥글다는 것.

품에 품을 수 있게 둥글고 탄력이 있다.

 

공은 구르고, 날고, 떨어지고, 튄다.

공을 차고, 때리고, 던지고, 밟는다.

 

공은 미끄러진다.

품에서 빠져나간다.

공은 굴러간다.

멀리,

공은 가시에 찔려 터진다.

 

공은 사람과 가장 친숙한 사물 가운데 하나다.

어릴 때부터 성장한 이후에도 공놀이는 늘 신이 난다.

 

조기 축구하는 아저씨는 말할 것도 없고,

연예인 야구단에서도,

아마추어 배구단, 핸드볼팀, 어디서나 공만 있으면 사람들은 뛰고 구르고 웃는다.

물론 싸우기도 하고.

 

공놀이는 비밀이 없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설렌다.

사내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어도 해가 지도록 놀 수 있다.

엄마가 아이들을 부르는 저녁이다.

 

공과의 산책도 그만, 집으로 돌아가서

둥글게, 평화롭게!

'독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서시>  (0) 2020.06.27
보리스 빠스제르나끄 <가을>  (0) 2020.06.26
파블로 네루다 <난 내 이름을 모른다>  (0) 2020.06.25
한강 <몇 개의 이야기 12>  (0) 2020.06.25
파블로 네루다 <산보>  (0) 2020.06.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