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 <난 내 이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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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파블로 네루다 <난 내 이름을 모른다>

by 브린니 2020. 6. 25.

난 내 이름을 모른다

 

 

언제까지 이 나를, 나는 모두에게 묻곤 했었지, 혼잣말처럼,

지치거든, 사람이

항상 같은 사람이 된다는 거, 이름도, 숫자도 같은

잊혀진 시계처럼, 도구처럼

다시 늘 침묵만 새로운

칼 손자루처럼 손에 닳아진.

 

똑-같다는 것은

죽음이 쌓이고 있다는 것, 결국 쉬는 거지

이 무릎과 핏줄만 쉬는 것이 아니라

이 우리의 이름도

하도 달고 다녀서, 하도 끌려 다녀서

불쌍한 병정처럼 내뱉어진 신세

흙과 전쟁 사이 반쯤 죽어서.

난 기억하지, 그 언젠가

내 이름 첫 세 글자를 잃어버렸을 때 말이야

그 말은 누구 말일까

내 말, 아니면 내 조상의 말?

 

확실한 건 난 남의 빚을 지고 살기 싫었어

그래 난 날 새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지 :

성도 새로 주고, 이름도 새로 달고

그리고 이 내 스스로 만든 효소 속에 커가기로 한 거야.

 

그러나 쓴 맛, 단맛 다 보고, 바쁜 중에 허덕이다 보니

긴 몸이, 생명의

깜빡이는 불빛이

내 허리를 닳게 하고 미끄러져갔어.

그래 나중에 보니 모두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

모두가 내 이름을 보고 덤비는 거야

어떤 사람은 그걸 할퀴고

상원에서 이쑤시개로 말씀이야

 

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무슨 치즈나 되는 양

내 온 키에다 구멍을 내고 말이야.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지, 나의 밤의 달도

나의 들풀 같은 소망도, 그 기질도.

그래 하도 훈장을 받다 보니

이젠 내가 벌거숭이 된 걸 느꼈어,

습기 찬 땅 밑으로나

내가 떠나온 그것으로나 돌아갈 차비가 된 거지.

 

군중들 속에서 사람은 동정 못 받아,

눈을 숨겨도 사람들이 봐,

말을 안 해도 사람들이 들어,

투명인간이 될 순 없어,

때 묻지 않고 살 순 없어 :

네 이름이 널 고발하고

길거리 이빨이 널 물어뜯거든.

 

                                          ―파블로 네루다(칠레, 1904-1978)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산책】

가끔 나의 이름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다른 이름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짜 이름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얼굴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이름이나 얼굴 등은 나를 나타내는 기호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없으면, 그것이 바뀌면 나를 나타내기 힘들다.

 

그러나 얼굴이 바뀌고,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를 나타내는 기호와 나는 어떤 관계인가.

 

경찰이 불심검문을 할 때

해외여행 때 입국 심사를 할 때

기타 이름이 필요할 때 이름이 없다면, 혹은 이름이 맞지 않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증명할까.

내가 나인 것이 분명한데 이름으로 나를 증명할 수 없다면.

 

이름은 나와 거의 동일한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나의 이름으로 안다.

나를 누구, 아무개로 알고 있다.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의 이름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이름을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너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늘 똑같다는 이유로, 새 이름으로 바꾼다면.

요즘은 법정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름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이름을 바꾸고 인생이 달라진 사람도 있다.

야구 선수들 중에는 이름을 바꾼 뒤 승승장구하는 선수도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손아섭이 단연 돋보인다.

 

아무튼 이름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내가 몸이라면 이름은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 없는 몸은 유령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이름으로만 기억한다.

아인슈타인, 빈센트 반 고흐, 마하트마 간디.

이름은 곧 그 사람이다.

 

처음 사람의 이름을 부른 것은 신이었다.

이름이 있어야 사람이다.

최초의 이름 “사람.” (아담은 사람이란 뜻이다.)

 

이름은 나를 고발한다.

나더러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라고 말한다.

이름이 없다면 짐승처럼 자유로울 것이다.

 

죽어서도 신의 법정에서도 내가 나의 이름으로 불릴까.

이름도 없이, 무엇도 없이 살겠노라는 노래가 기억날 듯 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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