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승 <아름다운 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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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김영승 <아름다운 폐인 >

by 브린니 2020. 6. 23.

아름다운 폐인

 

 

나는 폐인입니다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 같은 놈을 살게 내버려 둡니다

착하디 착한 나는

오히려 너무나 뛰어나기에 못 미치는 나를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를

그리하여 온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 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

 

                                           ―김영승

 

 

【산책】

김영승의 반성 시편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다 알 수 있다.

그의 시가 얼마나 다른가를.

 

기존의 시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면 그의 시들은 아름다움의 이면을 노래하고 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삶의 진실을 노래한다.

아니, 오히려 추하고 볼썽사납고, 보기 민망한 것들을 꺼내 들고 아름다운 시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아름다운 폐인>에서는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고 놀리고 조롱한다. 동시에 자기 자신이 아름답다고 우긴다.

 

착하디 착하고,

너무나 뛰어나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

그래서 온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

아름답지만 슬픈 나.

 

이런 나를 나는 아름다운 폐인이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그냥 내버려둔다.

어쩌면 내팽개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밖에 내놓아도(내버려도) 아무도 주워 가질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 같은 놈을 살게 내버둔다.

폐인이지만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한다?

 

시인은 과연 이 세상에 쓸모가 있을까.

플라톤은 시인을 공화국에서 추방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쓸데없는 생각을 전파하는 인간, 시인.

쓸데없는 상상, 공상, 환상, 망상을 하면서 그것들을 노래하는 시인.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듯 하지만 세상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시인.

세상의 제도나 체계를 무시하고 자유롭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 시인!

 

세상은 이런 시인들에게 가혹하게 살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저 혼자 살게 가만히 내버려두기도 한다.

 

최소한 시인이 무엇인가를 하려고 덤비거나

무엇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고,

대충 그냥 살기만 한다면.

 

세상의 바깥에 있는 사람을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사케르’라고 부른다.

법의 바깥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자.

옷을 입은 자는 무엇인가를 대표하지만 벌거벗은 자는 그냥 인간일 뿐이다.

법과 제도 바깥에서 어떤 의미도 없는 자, 폐인의 다른 이름 호모사케르.

 

시인은 그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사람만은 아니다.

추한 것도 말해야 한다.

악한 것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이 어떤 방식으로 노래하든 시인은 자기의 책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시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도 있다.

굳이 빛과 소금이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발견한 삶의 진실을 가감없이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승 시인의 <반성> 시편들은 시를 반성하게 만든다.

비록 그 자신은 자신을 폐인이라고 노래할지언정.

그래서 더 아름다운, 폐인으로서의 시인, 김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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