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埋葬)
나는 무덤자리를 찾고 있다.
어디가 더 밝은지 그대는 아는가?
들판은 너무 춥다. 바닷가 돌더미는 스산하고.
그녀는 정적에 길들었는데
지금은 태양빛을 좋아한다.
영원한 우리의 집을 짓듯이,
나는 그녀를 위해 암자를 지으리.
창문들 사이 조그만 문이 날 테고,
우리는 방안에 조그마한 램프불 피우리,
마치 어두운 가슴이 진홍빛 불빛으로 타오르듯이.
병든 그녀는,
다른 무엇, 하늘나라에 대하여 헛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한 수도승이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네 :
“천국은 당신들 죄인들을 위한 곳이 아니야.”
그러자, 고통으로 창백해진 그녀가
이렇게 속삭였네 : “나 그대와 함께 가겠어요.”
지금 여기에 우리 홀로 자유로워라,
발밑엔 파아란 파도가 밀려오고.
―안나 안드레예브나 마흐마또바 (러시아 1889-1966)
【산책】
자기가 손수 수의를 준비하고, 묘 자리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태어나는 것이 내 맘대로 된 일이 아니듯이 죽음도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아니, 그게 더 순리가 아닐까.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죽게 되든, 어느 무덤자리에 눕게 되든
어차피 나는 알몸으로 와서 알몸으로 죽는데 무슨 옷을 입든 어디 묻히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안나 안드레예브나 마흐마또바의 시<매장(埋葬)>에서는
어느 남자가 한 여자의 무덤자리를 찾고 있다.
그녀가 죽어서 누울 곳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녀는 태양빛을 좋아한다.
그녀가 죽어서도 좋아하는 것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치 우리가 함께 살 집을 짓듯이 그녀의 암자(무덤)을 짓고자 한다.
아름답다.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시는 마지막까지 이별을 사랑의 영역으로 승화시킨다.
그녀가 가게 될 곳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다른 세상 어디든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그녀가 없는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 찰 것이며
그녀를 잃은 한 남자가 고독과 상실감에 잠을 이루질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홀로 자유롭다면 그만,
바닷가 파도가 보이는 병실에서
그녀가 죽어가고 있고, 한 남자는 그걸 지켜본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같이 사랑하고 있다면
그만!
시간이 정지하고, 인생이 끝나고……
그러나
사랑은 불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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