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경계
―엔H. 베B. 엔H에게
사람들의 친근함 속에는 알 수 없는 경계가 있느니,
사랑도 정열도 그 경계를 가로지를 수 없는 것―
장엄한 정적 속에서 두 입술이 합쳐지고
가슴이 사랑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여기에선 우정도 무력하고,
넋이 자유롭고 색욕의 느릿한 권태를 모르는
숭고하고 열렬한 행복의 나날에도,
여기에선 무력하다.
이 경계에 돌진하는 이들은 미쳐가고,
여기에 도달한 이들은 번민으로 휩싸이느니……
이제 그대 알았을 테지요, 왜 내 가슴이
그대의 두 손 밑에서 두근거리지 않는가를.
―안나 안드레예브나 마흐마또바 (러시아 1889-1966)
【산책】
사람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지도 모른다.
강의 저편과 이편이 하나의 강물로 흐르고 있지만 결코 맞닿지 않는 것처럼.
강을 사이에 두고 나룻배 하나로 이편과 저편으로 가로지르는 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이 나룻배가 어쩌면 강 한복판에서 만나 폭풍 같은 사랑으로 나누기도 할 것이다.
두 배가 한 배로 갈아타고 격랑 속에서 열렬히 사랑을 나눈다.
혹은 배가 뒤집히는 줄도 모르고 강물에 휩쓸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인은 사람들과 사람들의 친밀함에 알 수 없는 경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랑도 정열도 그 경계를 가로지를 수 없고, 장엄한 정적 속에서 두 입술이 합쳐지고 가슴이 사랑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이 경계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정도 무력하고, 행복도 무력하다.
이 경계에 돌진하는 이들은 미쳐가고, 여기에 도달한 이들은 번민으로 휩싸인다.
사랑하는 연인이 가슴에 손을 대더라도 두근거리지 않는다.
정말 가슴 아픈 시다.
사람들은 사랑하면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사랑을 나눌 때 정말 한 몸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경계가 있다.
이 경계에 다다르면 모든 것이 무화無化 되고 만다.
정말 이런 경계가 있는 것일까.
있는데 없는 것처럼 모른 척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열렬히 사랑할 때는 없어지고
권태기가 오면 되살아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런 알 수 없는 경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경계에 도달하면 미쳐버리고 번민에 휩싸인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바로 이 경계에 몸을 던져 열렬히 사랑하는 것, 이 경계를 다 지울 듯이 미친듯이, 죽을 듯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연인의 책무가 아닐까.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러나 어떤 경계가 있다는 것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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