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오 빠스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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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옥타비오 빠스 <휴식>

by 브린니 2020. 6. 20.

휴식

―삐에르 레베디를 생각하며

 

새 몇 마리가

찾아온다.

그리고 검은 생각 하나.

나무들이 수런댄다.

기차소리, 자동차소리.

이 순간은 오는 걸까 가는 걸까?

 

태양의 침묵은

웃음과 신음소리를 지나

돌들 사이 돌이 돌의 절규를 터뜨릴 때까지

깊이 창을 꽂는다.

 

태양심장, 맥박이 뛰는 돌,

과일로 익어가는 피가 도는 돌 :

상처는 터지지만 아프지는 않다,

나의 삶이 삶의 참모습으로 흐를 때.

 

―옥타비오 빠스 (멕시코 1914-1998)  * 1990년 노벨 문학상 수상

 

 

【산책】

검은 생각.

나쁜 생각?

어두운 생각?

 

새들이 나무 사이를 들고 날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짙은 나무 그늘 사이로 태양이 비취면 그 빛의 끝자리에 돌이 있다.

돌은 빛을 받아 뜨거워지고 급기야 터져 버리고 만다.

 

돌은 빛을 품고 익어간다. 맥박이 뛰고 피가 돈다. 돌은 태양의 심장이 된다.

돌이 터져 상처가 까발려질 때 아픔보다 더 깊은 삶의 진실이 밝혀진다.

 

삶이 참 삶이 되는 시간.

새와 나무가 만나고 거기에 생각이 들고, 태양이 돌을 내리쬘 때,

돌처럼 굳어 있던 사람의 내면이 익어가고, 툭 터진다.

인생의 속사정이 상처 터지듯 밖으로 흘러나온다.

거기, 삶의 참모습이 적나라하다.

 

햇빛이 너무 강렬하기에 총을 쐈다는 이방인이 있다.

태양을 바라보면 한 순간 시력을 잃는다. 맹점이다.

 

검은 생각?

한 순간 나를 잃고, 총을 쏘거나 다른 무엇인가를 저지를 수 있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그 순간 자신의 숨겨진 상처가 터지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태양은 왜 태양 앞에 선 존재를 다른 세계로 이끄는가.

 

태양 아래서 벌거벗은 채 누워 있어 보라.

내 삶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맹점 혹은 검은 생각.

순간 시간이 멈춘다.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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