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한강 <파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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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한강 <파란 돌>

by 브린니 2020. 6. 20.

파란 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 한강

 

 

【산책】

십 년 전 꾼 꿈인데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꿈이 있는가.

꿈인데도 생생한 생시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가 있는가.

꿈에서 보았는데 눈으로 찍어서 내면에 인화된 사진 한 장 있는가.

꿈속에서 본 물건 하나.

꼭 갖고 싶었던, 훔치고 싶었던 물건 하나 있었던가.

 

꿈은 대부분 악몽이다.

꿈에서 행복했던 적이 거의 없다.

 

간혹 사람들은 깨고 싶지 않은 행복한 꿈을 꾼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행복한 꿈을 꾼 기억은 거의 없다.

 

십 년 전 꿈에서 파란 돌 하나를 본다.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궁금하다.

 

십 년 전에 나는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거기서 파란 돌을 보았다.

희고 둥근 조약돌 사이에서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파란 돌.

 

나는 파란 돌을 줍고 있었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아팠다.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 수 없고, 그래서 돌을 줍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아픈 게 아니다.

다시 산다는 게 너무 아파서.

 

왜 사는 것은 아픈 것일까.

십 년 전에 꿈에서 본 것을 지금도 꿈에서 다시 반복해서 만나는 것일까.

 

아니면 십 년 전 단 한 번 본 것을 기억할 뿐일까.

꿈에서 재생하는가, 아니면 기억에서 재생하는가.

 

그 빛나는 내로 돌아가는 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하게,

파란 달이 있을까.

 

어쩌면 그 파란 돌은 파란 달이 아니었을까.

냇물에 비쳐 냇물 아래 떨어진 돌처럼 보인,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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