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 한강
【산책】
십 년 전 꾼 꿈인데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꿈이 있는가.
꿈인데도 생생한 생시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가 있는가.
꿈에서 보았는데 눈으로 찍어서 내면에 인화된 사진 한 장 있는가.
꿈속에서 본 물건 하나.
꼭 갖고 싶었던, 훔치고 싶었던 물건 하나 있었던가.
꿈은 대부분 악몽이다.
꿈에서 행복했던 적이 거의 없다.
간혹 사람들은 깨고 싶지 않은 행복한 꿈을 꾼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행복한 꿈을 꾼 기억은 거의 없다.
십 년 전 꿈에서 파란 돌 하나를 본다.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궁금하다.
십 년 전에 나는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거기서 파란 돌을 보았다.
희고 둥근 조약돌 사이에서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파란 돌.
나는 파란 돌을 줍고 있었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아팠다.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 수 없고, 그래서 돌을 줍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아픈 게 아니다.
다시 산다는 게 너무 아파서.
왜 사는 것은 아픈 것일까.
십 년 전에 꿈에서 본 것을 지금도 꿈에서 다시 반복해서 만나는 것일까.
아니면 십 년 전 단 한 번 본 것을 기억할 뿐일까.
꿈에서 재생하는가, 아니면 기억에서 재생하는가.
그 빛나는 내로 돌아가는 것은 꿈인가 생시인가.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하게,
파란 달이 있을까.
어쩌면 그 파란 돌은 파란 달이 아니었을까.
냇물에 비쳐 냇물 아래 떨어진 돌처럼 보인,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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