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송찬호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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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송찬호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by 브린니 2020. 6. 19.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얼룩이 있다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누런 냄새, 누런 자국의,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그 건망증이다

바스락바스락 건망증은 박하 냄새를 풍긴다

얘야 이 사탕 하나 줄까, 아니에요 할머니,

할머닌 벌써 십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송찬호

 

 

【산책】

어느 집이나 오래된 추억 같은 물건이 있고, 그 물건에 얽힌 사연이 있다.

할머니의 방은 퀘퀘한 냄새가 나고 누런 자국들로 얼룩이 져 있다.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에 담긴 추억도 그렇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시인의 집에서는 아장 오래된 것이 건망증이다.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자꾸 잊는다.

할머니를 추억하는 냄새는 할머니가 꺼내주던 박하사탕의 향기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박하향기.

손주에게 주려고 지폐 한 장을 꼬깃꼬깃 속곳 주머니에 감추었다가 꺼내는 할머니.

사탕 하나를 껍질이 다 헤질 때까지 숨겼다가 손에 쥐어주는 할머니.

할머니는 십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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