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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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달이 뜬다>

by 브린니 2020. 6. 19.

달이 뜬다

 

 

달이 떠오르면

종들은 소리 없이 걸려 있고,

지나갈 수 없는 작은 길이

나타난다.

 

달이 떠오르면

바다는 땅을 덮고,

가슴은 무한 속의 섬 같다.

 

만월 아래서는

아무도 오렌지를 먹지 않는다.

초록빛 찬 과일을

먹어야 한다.

 

달이 떠오르면

일백 개의 똑같은 얼굴의 달,

은화가

호주머니 속에서 흐느낀다.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스페인, 1898-1936)

 

 

【산책】

"만월 아래서는 아무도 오렌지를 먹지 않는다. 초록빛 찬 과일을 먹어야 한다."

왜 보름달 밑에서는 오렌지와 같은 주홍빛 과일을 먹지 않고, 초록색 차가운 과일을 먹어야 하는 걸까. 초록빛 찬 과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장 먼저 일어난다.

 

보름에는 여러 가지 곡식을 먹는다. 보름 음식이 따로 있다. 보름나물과 오곡밥.

보름달이 뜨는 날은 흥겹고, 먹거리가 풍부하고, 민심도 넉넉하다.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윷놀이, 제기차기, 팽이치기,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논다.

 

하지만 만월에는 흉흉한 소문도 많다. 늑대인간이 나타나는 날이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보름달이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지만 서양에서는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기도 한다.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보름달이 뜨면 그 달빛을 받고 잔 사람은 늑대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로르카의 시 <달이 뜬다>에는 종소리가 멈추고, 지나갈 수 없는 작은 길이 나타난다.

‘지나갈 수 없는 작은 길’은 어떤 길일까.

 

밀물이 들어와 밭 밑까지 차오르고, 가슴은 외딴 섬처럼 비어 있다.

초록빛 과일들이 놓여 있고, 호주머니 속에는 달의 모양과 빛을 닮은 은화가 찰랑거린다.

 

달이 뜨는 풍경에 맞춰 시인의 내면에 떠오르는 다른 풍경들이 잇따라 펼쳐진다.

달빛이 살짝 걸쳐서 더는 다닐 수 없는 밤길,

바다 땅을 다 덮을 듯하고, 사람은 홀로 떠 있는 섬과 같다.

따뜻한 음식 대신 차가운 과일을 이가 시리도록 먹고,

달은 하나가 아니라 일백 개의 또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은화는 울고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롭고, 동시에 슬프기까지 한 풍경은 시의 환상 속에서 펼쳐지는 그림이다.

언어로 빚은 풍경은 푸른 빛이 돈다.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은화만이 하늘의 달처럼 은빛으로 흐느낀다.

달이 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밤에 산책하면서 흥얼거리면 그만인 시다.

지나갈 수 없는 길을 따라 걸어가보자.

막다른 골목 끝에 걸려 있는 달을 보면서 돌아서자.

마음이 텅 빈 것 같은가.

아니면 풍요로 가득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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