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장의 노래
엘비라의 아치를 통과해
네가 지나가는 걸 보고 싶다,
네 이름을 알고
그리고 울기 시작하기 위해.
무슨 창백한 달이 아홉시에
네 뺨에서 피를 거둬갔는가?
누가 눈 속에서 문득 불타는
네 씨앗을 거둬들였는가?
어떤 짧은 선인장 가시가
네 수정水晶을 죽였는가?
엘비라 아치를 통과해
지나가는 너를 나는 보련다,
너의 두 눈을 마시고
그리고 울기 시작하기 위해.
소리 높이 시장을 꿰뚫으며
나를 징벌하는 저 소리!
옥수수 더미 속의
저 황홀한 카네이션!
네 가까이서 나는 얼마나 멀리 있으며
네가 가버렸을 때는 또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엘비라의 아치를 통과해
네가 지나가는 걸 나는 보련다,
네 넓적다리를 느끼고
그리고 울기 시작하기 위해.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스페인, 1898-1936)
【산책】
아침에 처녀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걸어온다.
시장 앞 아치를 통과하는 처녀를 한 남자가 내려다본다.
울기 위하여.
핏기가 다 빠져 나간 듯한 투명한 뺨,
불타는 열정과 수정 같은 눈빛도 없이 어쩌면 그냥 시골 처녀처럼,
내가 기다리는 여인이 시장 앞 아치를 지나간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아내고, 너의 호수 같은 너의 눈을 마신다. 울기 위하여.
처녀를 훔쳐보는 남자는 징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옥수수 더미 사이 붉은 카네이션과 같은 여인은 황홀하게 걸어간다.
네 가까이 있지만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네가 멀리 사라져 가면 내 마음은 너와 함께 있다.
네가 어디로 가든 나는 네 주위를 맴돈다.
나는 네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고, 그리고 운다.
어쩌면, 마지막 구절에서, 그 여인은 반드시 젊은 처녀나 연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
큰 품으로 나를 눕히고 머리를 쓸어줄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어머니야 말로 아침저녁으로 장을 보러가는 여인이 아니던가.
아무튼 한 남자는 아치를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설렌다.
그리고 운다.
아침 시장의 밝고 활기찬 소리들 사이로 카네이션 같은 처녀가 걸어간다.
그런데 그 처녀를 훔쳐보는 사내는 운다.
시장 풍경과 언밸런스한 젊은 남자의 울음. 그는 왜 우는 것일까.
처녀가 그의 사랑을 거부한 것일까.
사랑이 너무 크면 울고 싶을 수 있다.
사랑만큼 슬픈 것이 또 있을까.
'독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 산책] 송찬호 <궤짝에서 꺼낸 아주 오래된 이야기> (0) | 2020.06.19 |
---|---|
[명시 산책]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달이 뜬다> (0) | 2020.06.19 |
[명시 산책] 칼 크롤로브 <나를 위한 풍경> (0) | 2020.06.17 |
[명시 산책]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나무, 나무……> (0) | 2020.06.16 |
<바가바드 기타> 함석헌 주석 (0) | 2020.06.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