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아침 시장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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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아침 시장의 노래>

by 브린니 2020. 6. 18.

아침 시장의 노래

 

 

엘비라의 아치를 통과해

네가 지나가는 걸 보고 싶다,

네 이름을 알고

그리고 울기 시작하기 위해.

 

무슨 창백한 달이 아홉시에

네 뺨에서 피를 거둬갔는가?

누가 눈 속에서 문득 불타는

네 씨앗을 거둬들였는가?

어떤 짧은 선인장 가시가

네 수정水晶을 죽였는가?

 

엘비라 아치를 통과해

지나가는 너를 나는 보련다,

너의 두 눈을 마시고

그리고 울기 시작하기 위해.

 

소리 높이 시장을 꿰뚫으며

나를 징벌하는 저 소리!

옥수수 더미 속의

저 황홀한 카네이션!

네 가까이서 나는 얼마나 멀리 있으며

네가 가버렸을 때는 또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엘비라의 아치를 통과해

네가 지나가는 걸 나는 보련다,

네 넓적다리를 느끼고

그리고 울기 시작하기 위해.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스페인, 1898-1936)

 

 

【산책】

아침에 처녀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걸어온다.

시장 앞 아치를 통과하는 처녀를 한 남자가 내려다본다.

울기 위하여.

 

핏기가 다 빠져 나간 듯한 투명한 뺨,

불타는 열정과 수정 같은 눈빛도 없이 어쩌면 그냥 시골 처녀처럼,

내가 기다리는 여인이 시장 앞 아치를 지나간다.

 

나는 너의 이름을 알아내고, 너의 호수 같은 너의 눈을 마신다. 울기 위하여.

 

처녀를 훔쳐보는 남자는 징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옥수수 더미 사이 붉은 카네이션과 같은 여인은 황홀하게 걸어간다.

 

네 가까이 있지만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네가 멀리 사라져 가면 내 마음은 너와 함께 있다.

네가 어디로 가든 나는 네 주위를 맴돈다.

 

나는 네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고, 그리고 운다.

 

어쩌면, 마지막 구절에서, 그 여인은 반드시 젊은 처녀나 연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

큰 품으로 나를 눕히고 머리를 쓸어줄 수 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어머니야 말로 아침저녁으로 장을 보러가는 여인이 아니던가.

 

아무튼 한 남자는 아치를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설렌다.

그리고 운다.

 

아침 시장의 밝고 활기찬 소리들 사이로 카네이션 같은 처녀가 걸어간다.

그런데 그 처녀를 훔쳐보는 사내는 운다.

 

시장 풍경과 언밸런스한 젊은 남자의 울음. 그는 왜 우는 것일까.

처녀가 그의 사랑을 거부한 것일까.

 

사랑이 너무 크면 울고 싶을 수 있다.

사랑만큼 슬픈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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