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나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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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나무, 나무……>

by 브린니 2020. 6. 16.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마르고 푸른.

 

얼굴 예쁜 아가씨가

올리브를 주우러 간다.

탑들에 구혼하는 바람은

그녀의 허리를 감아 잡는다.

네 기사가 지나갔다

안달루시아 조랑말을 타고,

하늘색과 초록 옷을 입고,

길고 검은 외투를 걸치고,

“코르도바에 한번 와요, 아가씨”

아가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젊은 투우사 셋이 지나갔다,

날씬한 허리에

옷은 오렌지빛,

고풍스런 은빛 칼을 차고,

“세비야에 한번 와요, 아가씨”

아가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저녁이, 퍼지는 빛 속에

자줏빛으로 물들자.

젊은이 하나 지나갔다, 장미와

달의 도금양을 가지고,

“그라나다에 한번 와요, 아가씨”

그러나 아가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얼굴 예쁜 아가씨는

여전히 올리브를 줍고,

바람의 회색 팔은

그녀의 허리를 휘감고,

 

나무, 나무,

마르고 푸른.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스페인, 1898-1936)

 

 

* 도금양 : 6월에 지름 2cm 정도의 연한 홍자색 꽃이 피는 상록수 관목.

 

 

 

 

【산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호세인이란 청년은 테헤레라는 처녀를 오래전부터 짝사랑해오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구혼을 하지만 테헤레는 반응이 없을 뿐더러 테헤레의 할머니도 호세인이 집도 없는 가난뱅이라며 환영하지 않는다.

 

호세인은 차가운 테헤레를 쫓아 구불거리는 언덕길을 오른다. 테헤레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길을 가고, 불쌍한 호세인은 구혼을 하며 대답을 듣기 위해 쫓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점점 멀어지고 테헤레의 모습도 점점 작아진다.

 

올리브 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애타는 구혼자와 냉정하게 아무 말 없이 제 갈 길을 가는 처녀와의 팽팽한 사랑의 줄다리기.

 

마치 이 영화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나무…… 나무,>를 모티브로 한 것이 아닐까 느껴진다.

 

<나무, 나무……> 에서도 구혼자들이 예쁜 처녀를 유혹하지만 처녀는 아랑곳 않고 올리브 따기에만 열중한다.

나무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마르고 푸른 나무.

 

나무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영물이기도 하다. 벼락을 수없이 맞고도 수백 년을 버티는 나무도 있다. 나무는 세상에 살아 있는 것들 중 가장 수명이 긴 생물체일 것이다. 나무가 사람들의 인생사를 다 지켜보고 기록할 수 있다면 아마도 어마어마한 양의 역사 기록물이 쏟아질 것이다.

 

구혼자들에게 냉담한 예쁜 아가씨는 올리브 나무 열매를 딴다. 구혼에는 냉담한데 올리브 열매 따는데 왜 열심일까. 올리브야 말로 건강한 식재료이며 생명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시 <나무, 나무……> 뿐만 아니라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 역시 예쁜 처녀가 구혼에 냉담하지만 결국 구혼자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해서 올리브 열매처럼 건강한 아이들을 낳고 살게 될 것이라 장난기 섞인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리브 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식물로서 올리브 열매를 재료로 올리브기름과 피클을 만들 수 있다. 잎이 작고 단단하며 비교적 건조에 강하기 때문에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의 지중해 지역에서 널리 재배된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유럽에서 생산되는 올리브 가운데 1/3을 생산한다고 한다.

 

올리브 나무가 최초로 재배된 곳은 약 5000~6000년 전 지중해 동쪽 연안으로 오늘날의 시리아(Syria)와 팔레스타인(Palestine)이 위치한 곳이다. 이후 기원전 1000년쯤 올리브 나무는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스페인과 아프리카 북부 지역으로, 그리스인들에 의해 이탈리아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올리브 나무는 세계적으로 재배 면적이 가장 넓은 과실목이다.

 

올리브 나무의 가지는 비둘기와 함께 평화의 상징이다. 구약성경에서 대홍수 이후에 형성된 육지를 찾기 위하여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무 가지를 가지고 돌아왔다는 구절이 나온다. 성경에는 올리브를 감람(橄欖)이라고 번역했는데 감람산은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기 위해 자주 올라갔던 산이다.

 

마르고, 푸른 나무.

약간 언밸런스한 조화다.

그러나 이런 부조화가 역설적으로 뜨거운 청혼과 냉정한 묵묵부답을 연결하는 시적 메타포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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