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칼 크롤로브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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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칼 크롤로브 <연가>

by 브린니 2020. 6. 15.

연가

 

 

 

1.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녹색의 굵은 호두를 검은색으로 물들이는 밤에

껍질을 벗긴 듯 말간 풍경 속에

물고기와 나뭇잎의 향기나는 풍경 속에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푸른 우유 속의 두 개의 머루 같은

너의 눈이 성냥불빛 속에 비친다

느릅나무 그림자 속의 둥근 달은

부드럽게 비추이지 않는다

달은 낡고, 닳았고, 바람에 부숴져

모래시계처럼 우울하게 흘러내린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침묵의 철자들을 나열해 본다

바람 없는 추위 속에 매운 상치냄새를,

너의 입을, 그리고 아이스크림 한 조각처럼 녹아드는

새벽 여명 속에 사실적으로 되어가는 밤을 철자로 읽어 본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2. 너는 가버리고……

 

그리고 나는 방의 벽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벽 위에 너의 소년기의 얼굴을 그려 놓았기에,

-엘제 라스카 쉴러

 

너는 갔다 너는 언제나 가버릴 것이다

날이 잿빛 비둘기들을 가슴에 안고 새벽 여명이 그 넓은 천을 우리 위에 펼칠 때

 

머리칼을 물들인 밤이 온다. 밤은 복숭아씨의 냄새가 난다

달이 박하 향내나는 밭 그루터기에 서 있다

뱀장어가 자라고 있는 강 위에 이슬이 떨어진다.

 

너는 갔다 엔찌안의 피리들의 푸른색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뒤에 남은 것은 방과 모직치마 위의 코르드자켓의 푸른색,

호기심 어린 모기 같았던, 지금은 없는 눈길,

 

불안과 청동의 목으로 벽지를 바른 벽들

너는 갔다 그리고 나는 이 방의 벽들을 사랑한다

너의 어린아이 적의 얼굴로 칠해 놓은……

 

3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마찬가지다

멜론을 토막토막 자르거나 컵 속의 물을 빛나게 하거나,

그 뒤에 흔들리는 공기처럼 하찮은 촛불의 우아함.

네가 없는 밤에.

 

오후에 창문 앞에 공작이,

그늘진 꽃다발처럼 내려앉았다.

여섯 시의 햇빛 속에

빛나는 머루 한 접시를 놓고

너는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둠을 견딘다.

단단한 검은 먹으로 그려진

입안의 눈물의 맛과

꽃 속의 매서운 바람을 지닌

네가 만들지 않은, 이 밤을.

 

어둠으로 갈라진 기와 뒤에

매미는 조용해지고 나는

식탁 앞에서 고독의 향내를 맛보아야만 한다.

침묵과 침묵 사이

네가 없는 밤에.

 

왼쪽으로 눕든 오른쪽으로 눕든 마찬가지다

적막의 포옹 속에 팔목시계가 가볍게 시간을 재고

담배의 물부리가 재로 변하고……

방금 전까지 내가 살고 있던 피안을 손가락으로 스쳐 본다.

붉은 목도리도 갈색 구도도 없는

네가 없는 밤에.

 

별빛 아래서 나는 너의 숨소리를 듣는다.

 

 

4

 

너를 위해 나는 낮과 밤을 벽지 위에 모았다

옛날 그림들에 있는 것 같은 거리가 있는 풍경,

그 풍경 안에는 두 개의 오리나무 사이로 하늘이 졸졸 흐르고

붉은 열매의 향기가 난다

도시의 거리에서 나는 고요를 들었다

너를 위해 생각해낸 그 고요 속에

수풀 속에서 풀잎이 사각사각 소리내고 옥수수알이 터지고

시간의 돌이 오래된 샘물 속에 가라앉는다

 

나는 너를 위해 시간을 추방했다

쐐기풀 더미를 팔에 안은 마녀,

포플라 나무 뒤의 음흉한 얼굴,

시간은 전설의 오페라처럼

담 위의 비행기 그림자처럼 사라져갔다

 

너를 위해 나는 현재를 만들어냈다

순간의 심연 위로 어른거리는 정확한 알코올처럼

공기 속에 미역 감는 살갗의 현재

도토리색의 목덜미의 현재,

육체의 단순한 선들의 현재

 

그리고 낮과 밤이 벽지 위에서 숨쉰다……

 

      ― 칼 크롤로브 (독일, 1915-1999)

 

 

【산책】

사랑을 잃고 쓰는 사랑의 시.

 

기형도의 시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에서처럼 연인이 떠나고 난 뒤 시인은 시를 쓴다. 왜 연시를 이별 후에 쓰는 것일까. 때늦은 시 쓰기.

 

시란 이런 것일까. 사랑이 뜨거울 때는 열정에 못 이겨 연애에 열중하느라 시를 쓰지 못하는 모양이다. 뭔가 마음이 텅 비었을 때, 사랑으로 충만할 때가 아니라 온 세상이 나 홀로 남겨 두고 텅 빈 것 같은 느낌일 때, 그럴 때 시인은 펜을 들고 뭔가 끼적인다. 시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인가.

 

그래서 시란 슬픔과 애잔함이 기본 정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는 이미 떠나 버렸다. 그리고 나는 네가 없는 빈 벽을 바라본다. 벽에는 네가 그린 어설픈 그림이 남아 있다.

 

“왼쪽으로 누워도 오른쪽으로 누워도 마찬가지다” 전전긍긍, 네가 떠난 뒤 잠을 잘 수 없다. 촛불이 우아하게 흔들리지만 하찮게 느껴진다.

 

“여섯 시의 햇빛 속에 빛나는 머루 한 접시를 놓고 너는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식탁 앞에서 고독의 향내를 맛보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없는데도 “별빛 아래서 나는 너의 숨소리를 듣는다.”

시인이 듣고 있는 사랑하는 이의 숨소리는 환청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연인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너를 위해 나는 낮과 밤을 벽지 위에 모았다”

네가 없는 벽, 네가 그린 그림만 남아 있다. 매일 낮과 밤, 나는 벽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슬픔에 젖어든다.

 

“나는 너를 위해 시간을 추방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 없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게 된다? 시간이 약이다?

그렇지 않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이 더 커진다.

그래서 시간의 악마처럼, 마녀처럼 나를 괴롭힌다. 나는 시간을 집 밖으로 쫓아낼 수밖에 없다.

 

나는 현재를 만들어낸다. 네가 현존하는 현재. 너의 목덜미와 육체의 선을 느낄 수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나는 비로소 숨을 쉬며 살아갈 이유를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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