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비센테 알레익산드레 <창조의 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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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비센테 알레익산드레 <창조의 복부>

by 브린니 2020. 6. 12.

창조의 복부

 

 

 

복부가 커지고 있다.

사리함의 진흙도 없이

빛들이 성장한다, 구른다

단련한다. 불타오르는 복부.

물질 중에선 오직

빛만이 불의 물질.

인간이 서서히 태어난다.

한 점, 한 점만으로.

은하수의 본원, 형체 있는

별들이 계승된다.

형체 갖춘 것들이 형상을 요구한다,

얻는다, 내보인다, 노래부른다.

인간은 단지

심심풀이로 내던져진

한 움큼의 빛 세포.

이토록 투명한 복부.

거기에는 눈, 입,

발, 장미가 스며 나오고

맑은 향기

소리, 목소리가 울리고 있다.

그 복부, 행복한 사리함이

밤에 순회하며 하늘,

수세기를 거슬러 지나간다.

 

오, 거의 영원한

인간다운 달, 근원,

무덤과 성배를 흐르는 달.

넌 항상 가장자리까지!

 

                         ― 비센테 알레익산드레 (스페인, 1898-1984)

 

 

【산책】

빛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상상하자. 조그마한 한 줌 빛이 있다. 조금씩 팽창하다가, 거대한 빛 덩어리,

불과 같이 불타오른다.

그 사이에서 인간이 서서히 태어난다.

 

“인간은 단지 심심풀이로 내던져진 한 움큼의 빛 세포.”이다.

그래서 매우 투명한 몸을 지녔다.

빛의 몸에서 눈과 입과 발, 그리고 장미가 나온다.

 

둥근 사람의 배(복부)는 달을 닮았다. 차오르다가 사그라든다.

여인은 매달 달거리를 하고, 열 달 임신을 한다.

배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드디어 또 다른 생명이 탄생하면 다시 오므려든다.

 

197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센테 알레익산드레의 시 <창조의 복부> 생명의 탄생을 빛의 팽창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달이 차오르고 지는 것을 근원, 창조와 빗대며 노래한다.

 

생명의 탄생은 늘 신비 그 자체이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 스스로 태어난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리라.

 

한 줌 빛에서 왔을까?

한 줌 흙이 되어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죽음을 알지 못하는 것 못지않게 생명의 탄생도 알 수 없다.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그냥 아는 것은 다르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 과학적, 의학적 견해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알고 싶다.

죽음이야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생명의 탄생은 태어났음에도 알지 못하니 정말 답답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인데 그 모든 것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인간은 거대한 빛 덩어리로부터(우주로부터?) "심심풀이로 내던져진 한 움큼의 빛 세포"라는 시인의 말처럼

태어났으니 치열하게 살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수밖에.

 

그래서 하루하루 정말 고맙고, 절실하다.

삶, 탄생과 죽음 사이,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한다.

시, 당신 속의 우주를 발견하는 것! 그 순간에!

 

 

 

 

*사리함(납골함) : urna(스페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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