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고트브리트 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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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고트브리트 벤 <시>

by 브린니 2020. 6. 10.

 

 

 

일찍이 신성이, 깊고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어떤 피조물 속에서 부활해 말했던 바,

그것이 곧 시이지, 왜냐하면

그 속에는 무한히 마음의 고통이 누그러져 있기 때문이지.

마음은 이미 아득한 흐름 속에 헤매인 지 오래이지만,

시절詩節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민족들의 싸움을 뛰어넘고

권력과 살인 동맹보다 오래 남아 있기 때문이지.

 

한 조그마한 종족, 이미 오래 전에

백인의 탐욕에 의해 정복당한

인디안들, 아즈텍 말을 쓰는 야스키 족들이 부른 노래들도

조용한 농요農謠로서 줄기차게 살아 있지 :

<얘야, 오너라, 오너라 일곱 이삭 치장 속으로,

얘야, 오너라, 오너라 사슬과 비취옥돌 속으로,

오월의 신이 우리를 먹여 살리러, 들판에 딸랑이 막대를 세우니,

너는 그 제물이 되어야겠구나 ― >

 

행로를 안으로 갈앉혀, 정신에 멍에를 씌우고 있는 자의

그 위대한 중얼거림,

들이쉬는 호흡, 내쉬는 호흡, 멈추는 호흡 ―

인도 고행승과 탁발승의 호흡의 종류―,

침묵에 몰두하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주어지는

그 위대한 자아, 전능의 꿈,

그는 찬가와 베다 경으로 자신을 가누면서

모든 행위를 비웃고 시간을 경멸하지.

 

두 개의 세계가 작용과 반작용을 하고 있고,

오직 천한 것은 동요하는 인간뿐,

그는 순간에 의지해 살아갈 수가 없지,

그가 그 순간에 힘입고 있다 하더라도.

권력은 미혹의 물거품 속에 사라지지만,

한 줄의 시구는 제민족들을 천박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꿈을 만들지,

언어와 소리로 된 불멸성을.

 

                   ― 고트브리트 벤 (독일, 1886-1956)

 

 

 

【산책】

이런 시의 정의를 읽은 적이 있는가.

고트브리트 벤은 시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시는 신성이 깃든 것이다.

시는 깊고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인간 속에서 부활해서 말하는 것이다.

시란 무한히 마음의 고통이 누그러져 있는 것이다.

시란 민족들의 싸움을 뛰어넘고 권력과 살인 동맹보다 오래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는 많은 민족들을 천박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언어와 소리로 된 불멸성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시가 그토록 힘이 있고, 강한 것이냐고.

사실 시처럼 무기력한 것이 어디 또 있으랴.

적의 침략을 막아낼 수도 없고, 전쟁을 평화로 바꿀 수도 없고, 기근을 풍요로 만들 능력도 없다.

시에는 싸움을 승리로 이끌 무기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시는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숨 쉬고 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시는 천상을 움직이는 언어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을 전할 때

자연과 풍경을 노래할 때

어떤 정신의 고양을 설파할 때

시는 고고하게 살아서 시퍼렇게 노려보면서

세상을 칼날처럼 벼려왔다.

 

그러므로 시는 인간의 호흡이면서, 세계의 숨이면서, 우주의 생기였다.

이제 당신에게 시란 무엇인가,

왜 시를 읽는가,

왜 시를 쓰는가,

한 번 더 생각해보면서 산책을 마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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