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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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by 브린니 2020. 6. 7.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정치철학 수업에서 마이클 샌델이 강의한 내용을 녹취한 이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0년 이후에 한국에서도 ‘정의’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너무나 유명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페이지를 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입장과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시장 자유주의의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마이클 샌델이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라가며 읽게 됩니다.

 

마이클 샌델은 강한 장단점을 갖고 있는 두 가지 사상체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칸트의 도덕 원칙과 존 롤스의 평등 원칙,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 등을 차례로 살펴나갑니다.

 

결국 마이클 샌델은 중용의 덕을 강조하며 모두에게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사회복지적 제도가 미국인들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져 논쟁거리가 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강조하여 상대방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논쟁을 보면서 ‘뭘 그리 심하게 그러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미국인들의 정서를 고려하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읽어야 이해가 됩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오히려 우리나라가 훨씬 더 선진적으로 공동선을 위해서 개인들이 희생하는 자세가 이미 실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서 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되더라도 이동경로를 다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사회적 비난을 받고 벌금이나 사법적 처벌까지 받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유럽에서는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코로나를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는 것을 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매우 의무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려는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이 점수가 동점이자 흑인 학생을 선발했다는 사실 때문에 백인 학생이 소송을 걸었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흑인을 노예로 부렸던 백인들, 즉 백인들은 그 조상의 죄까지도 속죄하는 것이 정의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를 보면 전형이 세부적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농어촌 전형, 사회배려자 전형, 장애인 전형 등 다양하게 소외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의 성적은 일반 전형 학생들에 비해 동점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낮은 수준임에도 그들은 입학 자격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점수가 높은 일반 전형 학생들이 이런 일로 소송을 제기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의료보험 제도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가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그렇게 부러워하여 미국에 적용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제도는 누진제도로서 수입이 많은 사람은 많은 금액을 내고 적은 사람은 적은 금액을 내어서 아플 때 누구나 의료 혜택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공동선을 향한 복지정책들이 미국에서는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최고의 대학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고,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있습니다. 과연 미국도 아직 가지지 못한 이런 좋은 제도들에 국민 모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과연 개인들의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이렇게 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런 제도들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군사 독재 시절에 강압적 실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실행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군사 독재를 통해 일사분란하게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복지 제도들을 도입해서 이만큼 발전했다는 논리로 일관하는 보수 우익 단체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미국과 거꾸로 된 방향으로 논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공동선을 향해서 가는 제도들을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가기 위해서 논쟁해야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제도들이 과연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이었는가 돌아보고 그렇지 않다면 이제라도 그 제도들이 우리의 사회적 합의가 되도록 논의하고 다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공동선의 정치’란 바로 이것입니다. 다소 복잡하고 오래 걸려도 모두의 인식이 공동선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서 시민의식을 향상시켜 자율적인 희생과 봉사를 하며, 불평등을 개조해 나가기 위해 연대하는 시민의 미덕을 키워나가자는 도덕적인 참여의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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