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자끄 프레베르 <새를 그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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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자끄 프레베르 <새를 그리려면>

by 브린니 2020. 6. 6.

새를 그리려면

― 엘자 앙리께즈에게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릴 것

다음에는 새를 위해

뭔가 예쁜 것을

뭔가 간단한 것을

뭔가 예쁜 것을

뭔가 유용한 것을 그릴 것

그 다음엔 그림을

정원이나

숲이나

혹은 밀림 속

나무에 걸어 놓을 것

아무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여러 해가 걸리기도 한다

실망하지 말 것

기다릴 것

필요하다면 여러 해를 기다릴 것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것은

그림의 성공과는 무관한 것

새가 날아올 때는

혹 새가 날아오거든

가장 깊은 침묵을 지킬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릴 것

그가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차례로 모든 창살을 지우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

나무의 초상을 그릴 것

푸른 잎새와 싱싱한 바람과

햇빛의 가루를 또한 그릴 것

그리고는 새가 노래하기를 기다릴 것

혹 새가 노래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쁜 징조

그림이 잘못된 징조

그러나 새가 노래하면 좋은 징조

당신이 싸인해도 좋다는 징조

그러거든 당신은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아서

그림 한구석에 당신 이름을 쓰라.

 

                             ― 자끄 프레베르(프랑스, 1900-1977)

 

 

 

 

【산책】

자끄 프레베르의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작품. 시와 함께 산책하기 정말 좋은 시. 춤추듯 시를 읽으며 산책하라. 천천히, 유유히, 마음을 환하게 비우고, 텅 빈 가슴으로 걸을 것. 바람과 구름과 새와 나비, 마음 한복판으로 날아드는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자. 길게 숨을 쉬었다 내뱉고, 자기 숨이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자. 숨이 흘러가 맞닿는 곳, 거기 새가 있을지도 모른다. 새가 우는 소리를 귀를 열고 들이마시자. 새소리에서 향기를 맡아보라. 새가 지나온 하늘과 흙과 나무의 냄새가 스며들리라.

 

새를 그리기 전에 모델이 되는 새를 캔버스 앞에 앉혀두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꾀를 낸다. 정말 살아 있는 새를 그려보리라. 새를 그리지 않고, 새를 그려보리라. 먼저 새장을 그려놓고, 그 안에 예쁘고 유용한 미끼를 두고, 숲에서 그저 기다린다. 세월이 얼마만큼 걸리더라도 끈기 있게 기다리리라. 그래서 그 기다림 끝에 새가 날아와서 새장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새장의 문을 살며시 닫는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아니 어깨와 손목에서 힘을 다 빼고 새장의 창살을 하나씩 지운다. 이제 새는 오롯이 새장 밖에 있다. 아니 새장의 안과 밖에 모두 있다.

 

시인은 새를 그리지 않고, 오직 새장만 그렸는데 그리고 다시 새장을 지웠을 뿐인데 그림 속에는 새가, 그것도 살아 있는 새가 턱,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 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시인은 노래하는 새가 앉은 나뭇가지에 싸인을 새겨넣는다.

 

새를 그리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오랜 기다림이 있다. 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국화꽃이 몇 번 피고 져야 할까. 시인의 오랜 기다림, 깊은 사색, 언어에 대한 절차탁마. 이 모든 것들이 푹 삭고, 익은 뒤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자끄 프레베르는 이런 창작의 고통을 오히려 위트와 유머로 바꿔놓았다. 시와 함께 창작의 고통이 끝난 뒤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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