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겨울 물고기>
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겨울 물고기>

by 브린니 2020. 6. 3.

 

물고기는 겨울에도 산다.

물고기는 산소를 마신다.

물고기는 겨울에도 헤엄을 친다.

눈으로 얼음장을 헤치며.

저기

더 깊은 곳

물고기들

물고기들

물고기들

물고기는 겨울에도 헤엄을 친다.

물고기는 떠오르고 싶어한다.

물고기는 빛 없이도 헤엄을 친다.

겨울의

불안한 태양 밑에서.

물고기는 죽지 않으려고 헤엄을 친다.

영원히 같은

물고기의 방식으로.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빙괴(氷塊) 속에 머리를 기대고

차디찬 물속에서

얼어붙는다.

싸늘한 두 눈의

물고기들이.

물고기는 언제나 말이 없다.

그것은 그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에 대한 詩도

물고기처럼

목구멍에 걸려

얼어붙는다.

 

     ― 이오시프 브로드스키(1940-1996)

 

 

 

【산책】

역사나 정치, 권력 등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분들은 이 시를 읽으며 공산주의 시대를 살면서 억압당한 러시아 국민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김수영의 시 <풀>을 떠올릴 수도 있다. 물고기가 얼음 속에서도 헤엄을 치듯 풀은 바람보다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민중들은 겨울 물고기처럼 세찬 바람 앞의 풀처럼 연약하지만 물고기의 방식대로 헤엄치면서 살고 풀의 방식처럼 눕고 일어선다.

 

이 시는 그런 민중의 아픔과 고통, 그러나 끈질긴 생명력 등을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겨울 강원도 화천 빙어 낚시 대회를 떠올리며 군침을 흘릴 수도 있다. 속물적이고, 경건하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평화로운 시대에 행복한 상상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것도 폭압의 시대를 거쳐 온 민중들이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 호흡한다는 것. 그리고 헤엄친다는 것. 살면서 꿈틀거린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자유를 열망하면서 자기 삶에 충실하는 것.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못해도 목구멍에 걸쳐 얼어붙더라도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가치를 힘껏 외치는 것. 불안한 태양과 차디찬 물이 물고기를 잠재우더라도 그저 살고 사랑하며 이웃과 더불어 웃고 우는 것. 그저 사는 것.

 

물고기처럼 풀처럼 그저 사는 것. 코로나19의 시대에도 숨이 막히는 마스크를 쓰고도 길고 깊게 호흡하는 것. 이 깊은 한숨의 시대를 조용히 생활하면서 거리를 조금 더 두되, 마음은 넓게 여는 것. 심연에서 헤엄치듯이 더 깊이 사랑하는 것.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