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겨울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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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겨울 결혼식>

by 브린니 2020. 5. 31.

겨울 결혼식

 

 

나는 1월에 혼례를 치르었다.

마당에는 하객들이 들끓었고

산마루 교회의 종은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혼례용 제단에서

행길의 두 끝이 보인다.

나는 파발꾼이 돌이키지 못하도록

저 멀리 시선을 던진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의 신랑은 나를 바라본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한 이 수많은 촛불들!

나는 그 초들을 세고 있다.

 

                       ―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1967년 作

 

 

시를 읽는다. 산책하듯이. 아무런 마음의 짐도 없이. 춤을 추듯 걷는다. 바람을 맞듯, 새소리를 듣듯, 언어들이 들려주는 향기를 느낀다. 인생의 냄새들, 사람 마음의 속삭임, 툭툭 건네는 사랑의 장난. 시를 읽는 것은 이런 느낌들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198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러시아 시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시 <겨울 결혼식>은 정말 아름답고 황홀한 시다. 늦은 잠에서 깨어 눈부신 햇살 때문에 눈을 반쯤 떴을 때의 느낌으로 바라보라. 흔들리는 사물들 사이로 꿈에서 본 장면들이 어른거린다. 수많은 촛불들, 멀리서 흔들리는 교회 종, 수군거리며 둘러 서 있는 많은 사람들.

 

이 시는 나의 결혼식을 내가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쓴 시다. 흥미로운 것은 봄이나 가을에 올리는 결혼식이 아니라 추운 겨울에 올리는 결혼식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추운 나라 러시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1월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나의 결혼을 축하한다. 교회 종소리도 멀리 울려 퍼진다. 사람들이 길게 두 줄로 늘어서 있고,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소리 한 가운데를 가로지른다. 그때 나는 먼 곳을 바라본다. 결혼 이후의 인생을 미리 보려는 것일까.

 

사랑하는 신랑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우리 두 사람의 사랑과 행복을 비는 수많은 촛불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즐거운 몽환에 빠져든다. 하나, 둘, 셋, 넷, …… 양을 헤아리듯 나는 촛불의 수를 세면서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산책을 즐긴 뒤 이 시를 다시 읽어보라. 어떤 느낌이 드는가. 시와 함께 두 번째 산책을 떠나기 위해 첫발을 떼어보라. 더 풍부한 햇살과 빛, 푸르고 넓고, 깊은 하늘, 욕심 없는 구름, 심술궂은 바람과 비의 냄새, 사람들의 발길에 일렁대는 흙먼지. 새롭고 흥미로운 산책을 한 번 더 걸어보라. 당신은 몇 월에 혼례를 치르었는가. 소리 내어 추억을 읊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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