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자끄 프레베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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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자끄 프레베르 <메시지>

by 브린니 2020. 6. 1.

 

누군가 연 문

누군가 닫은 문

누군가 앉은 의자

누군가 쓰다듬은 고양이

누군가 깨문 과일

누군가 읽은 편지

누군가 넘어뜨린 의자

누군가 연 문

누군가 아직 달리고 있는 길

누군가 건너지르는 숲

누군가 몸을 던지는 강물

누군가 죽은 병원

 

               ― 자끄 프레베르(프랑스, 1900-1977)

 

 

 

【산책】

왜 시의 제목이 메시지일까?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일까? 이런 질문부터 시작한다면 시와 함께 산책하기엔 좀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메시지, 뜻, 의미, 해석, 비평, 이런 것들을 집에 놔두고 가볍고 홀가분하게 산책을 시작해보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등 뒤로 문을 닫고. 전봇대 앞에서 만난 길고양이를 쓰다듬어 보라. 음식물 쓰레기장에서 누군가 깨물어 먹고 버린 사과를 볼 수 있으려나. 걷다가 지루하면 살짝 뛰어보자.

 

공원 숲을 달려서 한 바퀴 돌고, 한강변을 걸으며 위험 표지판도 읽자. 물에 들어가지 마시오. 저녁 무렵 강 건너 병원의 하얀 십자가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목숨, 생명, 죽음, 영혼에 대해 생각해보자.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앉았던 의자, 혹은 아이가 넘어뜨린 의자를 발견하고, 열려 있는 방문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산책을 마치고 길게 숨을 내쉬어 보라. 영혼의 한 부분이 빠져나오는 느낌을 느끼며 소파에 길게 누워보자. 소파에서 게으르게 뒹굴면서 시를 다시 읽어보자.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양을 세듯이 12명의 누군가를 헤아려보자.

 

각각 인생의 사연들을 지닌 누군가 12명. 그들과 저녁 만찬을 같이 하자. 최후의 만찬? 한 명이 부족하다면 옆집 친구를 불러 같이 하자. 와인 한 잔에 올리브기름 파스타. 먼 곳에서 어떤 메시지가 날아올지 모르니 조금 설레며 기다려보는 것도 느낌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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