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장벽을 쌓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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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장벽을 쌓고 나서>

by 브린니 2020. 6. 11.

장벽을 쌓고 나서

 

 

 

사람들과의 장벽을 쌓고 나서

나는 나 자신과의 장벽을 쌓고 싶어졌다.

그것은 손도끼로 깎아낸 나무 울타리는 아니다.

여기서 보다 필요한 것은 하나의 거울이었다.

나는 두루 바라본다 ― 침울한 생김새를, 뻣뻣한 머리털을,

턱 위의 군살들을

어쩌면 이혼한 부부의 삼면경(三面鏡)이

가장 좋은 장벽일지 모르지

창문에 비친 황혼이

커다란 찌르레기가 사는 경작지와

담벽에 뚫린 파열구 같은 호수 ―

톱니모양의 전나무로 둘러싸인 호수가 그 속으로 기어든다.

조심해라,

호수의 뚫린 구멍으로부터

그 어떤 웅덩이를 거쳐

외부세계가 이곳으로 기어들지도 모르니.

아니면 그 외부세계는 밖으로 기어나갈 것이다.

 

                                      ―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1966년 作

 

 

 

【산책】

산책은 봄이나 가을에 하기 좋다. 깊은 가을밤의 산책이 그만이다. 하지만 6월 중순의 밤, 열대야가 곧 들이닥칠 기세인데 홀로 집을 나선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부부끼리 산책을 나서도 좋다. 아직은 걸을 만하다. 바람도 간간히 불어온다. 높은 아파트 건물 사이로 바람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며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바람이 바람을 몰고 스쳐간다.

 

아파트를 벗어나 공원으로 나서면 조명이 켜진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가운데 작은 분수 셋이 올라온다. 물이 올라오는 크기에 따라 조명의 불빛도 달라진다. 연못을 지나 오솔길로 접어든다. 지난봄 화려했던 벚꽃나무가 푸른 잎을 달고 좌우에 늘어서 있다. 나무 사이로 달이 반쯤 모습을 드러낸다. 달이 지나가는 길에 구름이 가늘게 따라간다.

 

옛 시절의 나그네처럼 느긋하게 걸어간다. 공사장 담장을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산책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풀려 나가는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편히 눕는다

 

잠들기 전에 시를 읊는다.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장벽을 쌓고 나서>는 대인관계를 힘들어 하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시인도 사람들과 벽을 쌓고, 자기 스스로에게도 벽을 쌓는다.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사는 모양이다. 내가 특별히 더 이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것만으로도 위로가 좀 된다.

 

장벽을 쌓으면 언제까지 그 장벽을 지킬 수 있을까. 타인에게 쌓은 장벽은 그렇다 치고 내가 나에게 쌓은 장벽은 무너지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잠이 들락말락한다. 잠도 꿈도 아닌 상상이 떠오른다. 호수가 통째로 나에게로 밀려든다. 호수는 원래 움직이지 않는 것 아니던가. 웬일로 나에게로 달려든다. 멈춰 있던 물들이 거대하게 통째로 내게 들어온다.

장벽은 외부세계를 향해 쌓는 것이다. 그러나 장벽을 쌓았다고 해서 외부세계가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장벽이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외부세계는 곧바로 침입한다. 장벽이 견고하게 견디기 위해서는 차라리 외부세계를 내게 들이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어느 날 장벽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쌓은 장벽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나의 장벽을 본 적도 느낀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쌓았던 장벽은 나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었다. 내가 두 번째로 쌓았다고 믿었던 스스로를 향한 장벽은 사실 이미 쌓았던 장벽을 반복한 것이다. 장벽이란 다름 아닌 나만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내가 나에게만 집중하는 한 장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장벽을 쌓았다고 안전하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리 장벽이 견고한들 외부세계는 이미 내게 들어와 있다. 나도 세계의 한 부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침입할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다.

 

장벽,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허상. 베일을 걷어내고, 두 번째 산책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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