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오 빠스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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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옥타비오 빠스 <연인들>

by 브린니 2020. 6. 23.

연인들

 

 

풀밭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밀감을 먹는다, 입술을 나눈다

파도와 파도가 거품을 나누듯이.

 

해변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레몬을 먹는다, 입술을 나눈다

구름과 구름이 거품을 나누듯이 .

 

땅 밑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말이 없다, 입맞춤이 없다

침묵과 침묵을 나눈다.

 

                                          ―옥타비오 빠스 (멕시코 1914-1998) * 1990년 노벨 문학상 수상

 

 

【산책】

옥타비오 빠스의 시 <연인들>은 죽은 뒤의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죽은 연인들은 달콤한 과일을 한쪽씩 나누며 입술을 맞출 수 없다.

그러나 둘 사이를 흐르는 고요한 침묵을 나눌 수 있다.

연인들이 함께 묻혀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연인들은 지금 이 순간, 불타게 사랑하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 되기를 꿈꾼다.

내일 아침이 밝아오는 게 싫은 것은 비단 로미오와 줄리엣뿐만이 아니다.

모든 연인들은 행복한 이 밤이 영원하기를 빈다.

 

연인 중 하나가 배신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혼하게 되고 아이를 낳고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죽음은 사랑으로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연인들은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는 것을 꿈꾼다.

한 사람이 먼저 떠나고 한 사람이 남겨지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연인들>의 주인공 연인들은 다행히도 죽어서 함께 묻혀 있다.

한 날 한 시에 죽었는지 아니면 순차적으로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지금 같이 누워 있다.

살아 있을 때 함께 사랑을 나누던 그 모습처럼.

 

그러나 이제 과일을 나눠 먹을 수도 없고, 입술을 맞출 수도 없다.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사랑을 노래할 수도 없다.

오직 침묵뿐이다.

그러므로 연인들은 서로 침묵을 나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연인들은 나눌 게 없다고 한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 헨리의 단편에서처럼 그들은 머리칼과 빗을 나눌 수 있다.

 

비록 엇갈린 선물이지만 그들이 서로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나눌 수 없는 것은 없다.

죽어서도 침묵을 함께 나누는 연인처럼

아픔과 상처도 나눌 수 있다.

그리움과 미움과 증오도 나눌 수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무엇이라도 나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Power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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