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린니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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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 주기도문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6장 9절~13절) 기도는 너무 어렵.. 2020. 6. 23.
[창작 시] 당신을…… 주세요 당신을…… 주세요 내게 골방을 줘요 당신을 기다리며 고요히 침묵에 빠져드는 내게 밀실을 줘요 아무도 당신 대신 날 찾을 수 없도록 내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를 줘요 말에 지친 혀가 숨을 얻을 수 있도록 내게 왕의 침실을 허락해 줘요 당신과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세상과 인생과 죄와 용서와 장래 일을 누설하도록 내 마음에 당신의 방을 만들어 줘요 당신 방에 내가 잠들 수 있게 당신이 언제든 내게 들어와 우주를 쏟아 부을 수 있게 당신을…… 주세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친밀하고 당신께만 기도할 수 있도록 2020. 6. 23.
김영승 <아름다운 폐인 > 아름다운 폐인 나는 폐인입니다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 같은 놈을 살게 내버려 둡니다 착하디 착한 나는 오히려 너무나 뛰어나기에 못 미치는 나를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를 그리하여 온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 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 ―김영승 【산책】 김영승의 반성 시편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다 알 수 있다. 그의 시가 얼마나 다른가를. 기존의 시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면 그의 시들은 아름다움의 이면을 노래하고 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삶의 진실을 노래한다. 아니, 오히려 추하고 볼썽사납고, 보기 민망한 것들을 꺼내 들고 아름다운 시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에서는 자기 자.. 2020. 6. 23.
옥타비오 빠스 <연인들> 연인들 풀밭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밀감을 먹는다, 입술을 나눈다 파도와 파도가 거품을 나누듯이. 해변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레몬을 먹는다, 입술을 나눈다 구름과 구름이 거품을 나누듯이 . 땅 밑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말이 없다, 입맞춤이 없다 침묵과 침묵을 나눈다. ―옥타비오 빠스 (멕시코 1914-1998) * 1990년 노벨 문학상 수상 【산책】 옥타비오 빠스의 시 은 죽은 뒤의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죽은 연인들은 달콤한 과일을 한쪽씩 나누며 입술을 맞출 수 없다. 그러나 둘 사이를 흐르는 고요한 침묵을 나눌 수 있다. 연인들이 함께 묻혀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연인들은 지금 이 순간, 불타게 사랑하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 되기를 꿈꾼다. 내일 .. 2020. 6. 23.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서예지가 담은 무의식의 여성상들 서예지는 일반 대중들에게 그 이름이 익숙할 만큼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강한 인상을 남길 만한 작품의 주연을 맡은 일이 없었습니다. 마치 남자가 여자 목소리를 내는 것 같은 서예지의 낮은 저음에 대한 호불호도 있고, 전체적으로 수애의 이미지가 너무 떠올라 서예지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연을 맡은 드라마 를 통해 대중들은 그녀의 얼굴과 이름을 강한 인상과 함께 기억할 듯합니다. 성형수술의 의혹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과 170cm에 43kg의 늘씬한 몸매가 나이 서른에 어울리는 요염한 성숙미까지 덧입어 그저 아무 말 없이 지그시 화면을 응시하는 표정만으로도 눈길을 확 끌 만큼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사.. 2020. 6. 22.
[창작 시] 마음 사랑 마음 사랑 몸의 사랑이 시작되고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찾다가 물어본다 좋니, 좋아? 아아, 달콤해 몸이 대답한다 나도 당신도 사탕과 아이스크림으로 뒤범벅인 채 마음도 그러려니 새벽 두 시 몸이 조용해지고 마음은 소곤소곤 말을 한다 몸의 정지를 틈 타 새로이 사랑을 꾀한다 마음은 없다가…… 발생한다 마음의 장소는 어디였을까 마음은 사랑이 처음 시작되는 지점에 고요하게 있다 2020. 6. 22.
코로나 시대의 사랑 코로나 시대의 사랑 카페에는 저니Journey의 오픈 암스Open Arms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카페에서 저렇게 강렬한 음악을 튼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세찬 남자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팔을 활짝 벌리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다 받아주겠다는 것 같았다. A는 B가 다가오자 팔을 크게 벌렸다. B는 A에게 안기는 시늉을 하고 앞자리에 앉았다. A는 오랜만에 카페에 왔다. 며칠 동안 먼 도시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그곳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집단으로 퍼져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고, 병원과 의료진이 모자랐다. A는 거의 일주일 넘게 봉사하고, 이주일 간 자가 격리를 했다. A는 자가 격리를 하는 동안 미칠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커피를 몇 잔씩 마셔도 그 맛이 아니야. 담배도 몇 갑 피워도 그저 연기를 .. 2020. 6. 22.
한강 <피 흐르는 눈 4> 피 흐르는 눈 4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 세상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있다 고요히 등을 돌린 뒷모습들이 차라리 나에겐 견딜 만해서 되도록 오래 여기 앉아 있고 싶은데 빛이라곤 들어와 갖힌 빛뿐 슬픔이라곤 이미 흘러나간 자국뿐 조용한 내 눈에는 찔린 자국뿐 피의 그림자뿐 흐르는 족족 재가 되는 검은 ―한강 【산책】 고요히 시를 다시 읽어보자.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 세상의 뒤편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있다 고요히 등을 돌린 뒷모습들이 차라리 나에겐 견딜 만해서 되도록 오래 여기 앉아 있고 싶은데 이런 적이 있는가. 있다. 무수히 많다. 세상이 등을 돌리고 앉은 느낌. 불러도 불러도 그 어디에서도 대꾸 한 마디 없는. 구원은 어디에도 없는, 구원자도 없고, 구원의 .. 2020. 6. 22.
안나 안드레예브나 마흐마또바 <매장(埋葬)> 매장(埋葬) 나는 무덤자리를 찾고 있다. 어디가 더 밝은지 그대는 아는가? 들판은 너무 춥다. 바닷가 돌더미는 스산하고. 그녀는 정적에 길들었는데 지금은 태양빛을 좋아한다. 영원한 우리의 집을 짓듯이, 나는 그녀를 위해 암자를 지으리. 창문들 사이 조그만 문이 날 테고, 우리는 방안에 조그마한 램프불 피우리, 마치 어두운 가슴이 진홍빛 불빛으로 타오르듯이. 병든 그녀는, 다른 무엇, 하늘나라에 대하여 헛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한 수도승이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네 : “천국은 당신들 죄인들을 위한 곳이 아니야.” 그러자, 고통으로 창백해진 그녀가 이렇게 속삭였네 : “나 그대와 함께 가겠어요.” 지금 여기에 우리 홀로 자유로워라, 발밑엔 파아란 파도가 밀려오고. ―안나 안드레예브나 마흐마또바 (러시아 188.. 2020.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