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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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코로나 시대의 사랑

by 브린니 2020. 6. 22.

코로나 시대의 사랑

 

 

 

카페에는 저니Journey의 오픈 암스Open Arms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카페에서 저렇게 강렬한 음악을 튼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세찬 남자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팔을 활짝 벌리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다 받아주겠다는 것 같았다.

 

A는 B가 다가오자 팔을 크게 벌렸다.

B는 A에게 안기는 시늉을 하고 앞자리에 앉았다.

A는 오랜만에 카페에 왔다. 며칠 동안 먼 도시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그곳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집단으로 퍼져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고, 병원과 의료진이 모자랐다. A는 거의 일주일 넘게 봉사하고, 이주일 간 자가 격리를 했다.

A는 자가 격리를 하는 동안 미칠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커피를 몇 잔씩 마셔도 그 맛이 아니야. 담배도 몇 갑 피워도 그저 연기를 내뿜을 뿐이지. 어떤 분위기가 커피 맛을 내고, 담배의 풍취를 돋우는 것 같애. 아우라가 없으면 껍데기에 불과하지. 사람들은 사물을 즐길 때 어떤 분위기 속에서 뭔가를 느끼나봐. 집에서 혼자 있을 땐 도무지 이 느낌이 아니거든.

A는 오랜만에 대화 상대를 찾아서인지 즐겁게 떠들었다.

B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곳 상황은 어때?

B가 물었다.

겉으로는 평온해. 언론에서 크게 떠들지만 사람들은 약간 무심하고 크게 변화는 없어. 거리 곳곳이 통제 아닌 통제여서 사람들 왕래가 뜸할 뿐이야.

A가 대답했다.

 

그렇겠지. 바이러스가 좀비처럼 도시를 헤집고 다니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 바이러스는 숨어 있어.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사람들 몸에 스며들어 있지.

그게 더 무섭군.

맞아 보이지 않는 게 진짜 독이지.

자, 사약 한 사발씩 하지.

B가 커피 잔을 들어올렸다.

 

사이비 종교집단 집회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는데 일반 사람들은 괜찮을까.

B가 물었다.

집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감염시켰고, 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옮겼겠지. 얼마나 많이 퍼졌을지는 아무도 몰라.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대규모 감염을 실제로 보니까 정말 이상하군.

말세잖나.

하하하. 의사가 종교적 진단이라니.

그러게 과학에서도 미래가 암울할 것이라고 예측하잖나.

 

미국에선 중국 연구소에서 바이러스 실험을 하다가 유출됐을 거라고 추측 보도를 하던데……

그 친구들이야 말로 영화를 많이 본 게 아닐까. 레지던트 이블 같은 영화 말이야.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바이러스가 이렇게 치명적이라며 나중에라도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가능성은 충분해. 지금도 생화학무기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으니까.

A와 B는 잠시 입을 닫고 침묵했다.

왠지 대화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코로나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구먼.

A가 입을 열었다.

그게 뭔가.

출산율은 조금 늘고, 연인들이 더러 헤어진다더군. 집에만 있으니 부부들은 자주 사랑을 하는데 연인들은 만나질 못하니까 헤어지기 쉽다는 거야.

출산율이 느는 건 고무적인데 연인들이 깨지는 건 안타깝군.

하하, 그러게 말야. 근데 또 하나 더 있어.

뭔데 그게.

일본에서는 풍속 산업이 아주 침체라는군. 아마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을까.

그렇겠군. 직접 접촉을 꺼리는데 매춘이라니. 어지간한 배짱 아니면 힘들겠군.

 

그렇지. 근데 그래서 사람들이 홍등가를 찾지 않는 건 아니야.

그럼 뭔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동선 파악이 문제라네. 확진자로 밝혀지면 동선을 파악해서 공개하게 되는데 만약 자신이 성매매 업소를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 보게. 무슨 망신인가. 집안사람들 보기도 민망하고.

사실 그렇지. 우리나라 사람들 겉으론 안 그런 척 하는데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체면을 구기니까. 개망신 당하는 게 코로나보다 무서울 수도 있겠네.

맞아. 더욱이 남한테는 뻔뻔하지만 집안사람들한테는 쉬쉬하는데 밝혀지면 정말 곤란하겠지.

부부싸움 나겠군. 이혼할 수도 있고.

그렇지. 그게 코로나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지.

 

그럼, 불륜 커플들도 타격을 입겠군.

당연하지. 일단 만나는 게 쉽지 않고, 만났다가 들통이 나면 아주 곤란해지니까.

코로나 시대엔 부부끼리 사랑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정상적이라는 게 다시 한번 인정되겠구먼.

 

그래, 그게 이런 시대에 발생한 유일한 좋은 점이라고도 할 수 있어.

그러고 보면 말세라서 하나님이 코로나를 보내서 세상을 정화시키려고 한다는 종교적 진단도 꽤 설득력이 있군 그래.

하하하. 또 종교적 진단이구먼. 하하하.

하하하, 요즘 세상을 어떻게 다 과학적으로만 설명하겠나.

 

B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코로나 시대에는 오히려 낙원에 되돌아온 듯 벌거벗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묻어왔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를 소독하고 흐르는 물에 오랫동안 몸을 씻어야 한다. 밖에서 깨끗하게 무사귀환 했으니 집에서 조용하게 지루함을 견딘 아내에게 사랑의 입맞춤을 하고, 건강한 토끼들에게도 이마에 입을 맞추어야 한다.

 

한동안 우리 사회는 부부 사이에는 사랑이 없는 듯,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우스갯소리를 하며 로맨스를, 에로스를 가정 밖으로 몰아낸 느낌이 없지 않다.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간통죄가 폐지되고, 혼인빙자간음죄도 없어졌다. 가정은 무방비 상태가 되고, 성적 선택의 자유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시적 사랑이 범람하고, 포르노그래피가 성행하고, 프리섹스가 유행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투 운동이 활발하다. 이제 남성들은 정사동의서를 받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고리타분한 윤리를 걷어내고 나니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통적이지만 부부의 윤리를, 부부간의 사랑을, 선을 넘지 않는 욕망의 자유를 더 강조하는 시대가 정녕 도래한 것인가.

무엇이 옳은가 따지기 보다는 시대에 맞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는 불타는 낭만의 시대가 아니다. 북적대지 않고, 고요하고, 활동 영역이 축소되고, 많이 만들고 많이 쓸 수 없다. 얼음장 위를 걷듯 조심해서 돌아다녀야 한다.

 

이 시대는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이, 가족간의 화목과 이웃 사이의 배려와 거리가 더 필요하다. 어찌보면 우리 모두가 늘 그리워다는 것들이 아니던가.

이런 시대가 도래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자. 절제와 함께 자유를 누리자.

 

코로나 시대, 사람들 사이의 사랑은 집에 머물러도 좋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고, 매우 바람직한.

 

 

 

*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폴 앤더슨 감독, 밀라 요보비치의 SF 스릴러물 시리즈로 ‘레지던트 이블1(2002)’을 시작으로 ‘레지던트 이블2(2004)’ ‘레지던트 이블3-인류의 멸망(2007)’ ‘레지던트 이블4:끝나지 않은 전쟁(2010)’ ‘레지던트 이블5:최후의 심판(2012)’ ‘레지던트 이블:파멸의 날(2016)’까지 개봉된 영화이다. 원작은 바이오하자드(バイオハザード)로서 1996년 캡콤에서 발매된 플레이 스테이션용 호러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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