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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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by 브린니 2020. 6. 25.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장 1절~4절)

 

산상수훈 설교를 마치신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와서 제일 먼저 고친 사람은 나병환자입니다.

 

나병은 육체적인 질병인 문둥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 정신과 마음과 영혼이 문드러져 썩어가 남몰래 어두운 곳에서 진물이 흐르는 죄를 짓고 있거나 이미 그 죄가 들통이 나서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질시를 받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그런 나병환자가 나음을 받으려면 자신의 상태에서 나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차라리 육체적인 질병이라면 당연히 스스로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아오려는 노력을 하는 경우가 많으나 마음의 병과 정신의 병인 경우에는 스스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알콜중독이나 게임중독, 성중독과 같은 중독 증세를 가진 사람들은 나병환자만큼이나 심각한 상태이지만 스스로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꺼립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도 이미 그것이 그들의 삶의 의미가 되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려는 결단을 하기가 힘듭니다.

 

외도 역시 관계의 중독이라고 합니다. 무덤덤해진 부부 사이보다는 설레는 이성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관심을 보일 때마다 그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는 상대방에 대한 짜릿한 즐거움에 중독되어 바람을 피우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 거식증이나 폭식증 등의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이미 그 감정 상태가 삶의 기본 패턴이 되어서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도 거기에서 나오려는 노력을 하지 못합니다.

 

작게는 금연이나 금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흡연을 하는 여성분들은 금연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우울해하는 경향이 많고, 술을 마셨을 때 자주 필름이 끊기고 엉망으로 취해서 주변인들에게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끊지 못해 자존감이 낮은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를 힘들게하는 나병들은 이렇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공통점은 거기에서 헤어나오고 싶어하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매여서 스스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성경 본문의 나병환자는 과감히 사람들 사이를 뚫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나을 거라고 믿는 믿음이 그 힘겨운 싸움을 이기게 합니다.

 

만약 여전히 자신을 붙들고 있는 나병에서 박차고 나아갈 용기가 없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과연 자신에게 첫 번째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십 년간 노력해도 금연하지 못해 우울했던 사람이 예수님과의 관계가 진지해지자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담배를 더 사랑하는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가, 생각하면, 당연히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하면서 순간순간 흡연 욕구를 던져버렸더니 어렵지 않게 금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 가면 그 냄새를 자기도 모르게 맡게 되기도 하고, 밤에 잠을 자다가 담배 연기를 생생하게 흡입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때때로 자신이 정말 금연을 하게 된 건가 의심하기도 하면서 다시 속상한 일이 있으면 담배를 찾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정말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더랍니다.

 

또 주사 문제가 있어서 술만 마시면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이 예수님과의 관계가 진지해지면서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어느 날 쓸쓸한 바닷가를 거닐다가 그 분위기에 젖어서 술을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합니다.

 

단지 생각만 했을 뿐이고 별다른 음식도 먹지 않아 배탈이 난 것도 아닌데, 바닷가에서 돌아와 집에서 쉬려 할 때 마치 술에 엄청나게 취한 사람처럼 어지럽고 구토가 나서 실제로 만취한 사람처럼 토하고 쓰러져버렸답니다. 얼마나 괴롭던지 다시는 술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나를 썩게 하는 나병으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나고자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것까지 말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하실 일입니다. 그 믿음이 내게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병을 이기고 싶다고 고백할 때,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잡아 끌어 나갈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우리 삶은 예수님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돌돌 꼬인 동아줄과 같습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그 동아줄 안에 꼬여들어갈 때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든 기적의 역사들이 우리 삶에 임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특히 그 “받으라”는 말씀이 가슴에 메아리쳐 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치유되기를 항상 바라십니다. 그리고 깨끗함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수님이 내미시는 그 치유를 받지 않고 외면하는지 모릅니다. 이미 중독의 문제, 얽매임의 문제들이 삶의 패턴이 되고 존재 안으로 스며들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떼어내는 것은 살점을 저며 떼어내는 것만큼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가 진물이 줄줄 흐르는 썩어가는 환부를 드러내야 하는 고통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먼저 자신을 얽매고 있는 것이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떼어내야만 자기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멋지게 의지를 발휘하여 잘라내야 합니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말의 목을 베어버린 김유신처럼 가장 아끼는 것을 잘라내는 마음으로 장군처럼 칼을 휘둘러야 합니다.

 

그런 의지를 가지는 순간, 모든 일은 성령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의지를 가질 뿐, 인간적 의지이기에 나약하기 짝이 없어 또다시 지고 말지만, 궁극적으로 이길 수 있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긴가민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믿음을 가지고 의지를 가지면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병을 고치신 후에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사역이 방해를 받을 것을 염려하여 말씀하신 거라는 해석도 있지만, 또 다른 재미있는 해석이 눈길을 끕니다.

 

바로 ‘나은 자의 오만’을 경계하셨다는 해석입니다. 참, 인간은 안 되는 존재인가 봅니다. 나병이 나았다고 또 오만해지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특별 은혜를 받은 양 간증을 하다가 돌연 본인이 특별한 사람이 되니 말입니다.

 

어느 순간 마치 자기가 예수님의 특별 은혜를 받을 만한 무슨 특별한 점이 있었던 양 이야기가 변하게 되고, 그러다가 자기가 무슨 신적 능력을 받은 사람인 양 이상하게 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아왔습니다.

 

나병이 나았다고 해서 자신이 나병환자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자기만 나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모든 이들이 어떤 면에서는 나병의 특성을 지닌 삶의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내게 나병을 고치신 주님의 은혜가 다른 이들에게도 임하기를 기도하고, 그들이 얽매인 몸과 마음의 병으로부터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결단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예수님께로 향하기를 오늘도 허공에 대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가 누군가의 영혼에 가 닿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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