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린니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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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말 1위 (feat. 황건하, 고영렬, 길병민-윤상: 바람에게) 결혼생활을 오래 한 중년 남성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말 1위는 “미안하다”였다고 합니다. 남편들은 왜 아내에게 미안할까? 그런 물음을 오래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애청하는 TV 프로그램 팬텀싱어에서 황건하, 고영렬, 길병민 트리오가 부르는 윤상의 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뮤지컬 배우와 한 맺힌 소리를 내는 판소리 가수와 깊고 중량감 있는 베이스 가수가 하모니를 이루어 부르는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혹시 그 사람을 만나거든 용서를 빌어주겠니 홀로 버려둔 세월이 길지는 않았는지 우연히도 마주치게 되면 소식을 전해주겠니 아직 그래도 가끔은 생각이 날 테니까 혹시 그 사람을 만나거든 용서를 빌어주겠니 홀로 버려둔 세월이 길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나를 기다리거든 내.. 2020. 6. 9.
[명시 산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시골에서 하나님은> 시골에서 하나님은 시골에서 하나님은 조소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집 한 구석에 사는 게 아니다. 그분은 가는 곳마다 살고 계신다. 그분은 지붕과 식기를 정결히 하고 집집마다 공정히 절반씩 나누어 주신다. 시골에 하나님은 남아돌 정도로 많이 계신다. 그분은 토요일마다 주철제 솥에 등나무 콩깍지를 끓이고 졸린 듯한 표정으로 불 위에서 춤을 추듯이 발을 놀린다. 그러고는 목격자인 나에게 눈짓을 하신다. 그분은 담장을 쌓고, 처녀를 산림지기에게 시집보내고 오리를 쏘는 순라군의 총알이 영원히 빗나가도록 장난을 하신다. 가을의 거센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시골의 한 무신론자에게 허용된 단 하나의 유일한 행복이리라. ―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1964년 作 【산책】 신은 어디에나 .. 2020. 6. 9.
[창작 시] 짧은 연애 짧은 연애 1 몇 번의 연애와 배신과 상처에 지쳐갈 쯤 그대를 만났네 그해 겨울은 눈이 퍼부었네 비틀, 비틀대며 위태롭게 경복궁 돈화문 창경궁 광화문 뒷길을 걸었네 눈 속에 파묻힐까 그대 품에 파고들었네 키가 크고 코트 자락이 바닥에 쓸리던 남자 뒤에 숨어 옛 기억을 잠시 잊었네 내리는 눈이 먼 곳으로 데려갔네 여러 사람 앞에서 축하받는 날 그대는 빈손으로 찾아왔네 기뻤네 사람들 사이에 그대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대와 몰래 파티장을 빠져나와 밤길을 걸었네 마지막 전철을 타려고 시청역 코인락커 앞에 멈췄네 그대가 건네는 열쇠로 함을 열었을 때 거기, 수줍은 들국화 한 묶음 놓여 있었네 쑥스러워하는 소년이 내 곁에 서 있었네 2 무작정 걷기만 했네 돈화문 뒷길 눈이 없던 가을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네.. 2020. 6. 8.
마트에서 일하는 손님 마트에서 일하는 손님 어느 날 마트에 손님이 하나 찾아왔다. 그는 카트를 끌고 이곳저곳을 돌며 상품을 샀다. 이것저것 마구 카트에 담는 게 아니라 상품 하나하나를 아주 꼼꼼히 살핀 뒤 가격도 비교하면서 쇼핑을 했다. 몇 시간 동안 매장을 돌아다닌 후 그가 사들인 상품은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는 계산하기 전 매장 직원에게 매니저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직원이 물었다. 아뇨, 여쭤볼 게 있어서요. 그가 대답했다. 직원은 매니저에게 무전을 했고, 매니저가 곧 달려왔다. 그는 매니저와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계산을 한 뒤 매장을 나갔다. 며칠 뒤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물건을 몇 개 샀고, 매장 직원에게 매니저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직원이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또 물었다. .. 2020. 6. 8.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정치철학 수업에서 마이클 샌델이 강의한 내용을 녹취한 이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0년 이후에 한국에서도 ‘정의’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너무나 유명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페이지를 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입장과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시장 자유주의의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마이클 샌델이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라가며 읽게 됩니다. 마이클 샌델은 강한 장단점을 갖고 있는 두 가지 사상체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칸트의 도덕 원칙과 존 롤스의 평등 원칙,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 등을 차례로 살펴나갑니다. 결국 마이클 샌델은 중용의 덕을 강조하며 모두에게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공동선을 추구해.. 2020. 6. 7.
하얀 어둠 하얀 어둠 폭설 경보 내린 날 세상은 온통 흑백필름으로 찍은 사진 같다 집과 나무들 술렁이던 가게들 색色을 버리고 고요해진다 붉은 패딩을 입고 종종걸음 치는 남자, 이제 막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온 파란 자동차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하지만 잠시 프랑스 국기처럼 펄럭이던 그들 모두 눈을 덮고 점멸한다 사람과 사물들 하얀 어둠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2020. 6. 7.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은 헬라어 ‘카르디아’로 그리스인들에게는 육체적으로 ‘신체의 중심 기관’을 가리키고, 비유적으로는 ‘감정이나 사고의 중심지’를 뜻합니다. 신약에서 이 용어는 인간의 지, 정, 의의 근본 원천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청결’의 헬라어 ‘카다로스’는 유대교의 정결 예식에서 사용된 용어로 도덕적 종교적 정결을 의미했습니다. 즉 ‘마음이 청결한 자’.. 2020. 6. 7.
[명시 산책] 고트브리트 벤 <과꽃> 과꽃 과꽃―, 팽창된 날들, 해묵은 맹서, 마력, 신들은 머뭇거리는 시간을 천칭 저울에 갖다 댄다. 또 한번 금빛 가축의 무리 하늘, 빛, 꽃핀 한 철, 무엇이 이 케케묵은 생성을 죽어 가는 날개 아래 보듬고 있는가? 또 한번 금빛 가축의 무리 도취, 장미의 그대― 여름은 비스듬히 기대고 서서 제비들이 날아가는 쪽을 바라보고 있고, 또 한번 추측, 이미 확실한 곳에서, 제비들은 물결을 스쳐 나르며 여행과 밤을 마시고 있다. ― 고트브리트 벤 (독일, 1886-1956) 【산책】 “신들은 머뭇거리는 시간을 천칭 저울에 갖다 댄다.” 머뭇거리는 시간은 여름에서 가을로 변화하는 시간을 말한다. 여름은 온갖 꽃들과 나무들을 갖고 살았다. 멋지고, 웅장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가을은 빈곤하다. 가을은 스스로 가난.. 2020. 6. 7.
수험생이 먹어야 할 영양제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수험생 못지않습니다. 대신 공부를 해줄 수도 없고, 도와줄 수 있는 거라곤 뭐 좀 건강에 좋은 것을 먹여볼까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좋아하는 음식과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식탁에 차려주지만, 대체로 수험생들은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입맛이 없어서 충분히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부모들은 애가 탑니다. 그래서 따로 영양제나 보약을 먹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영양제나 보약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몸에 좋다는 보약을 지어 먹입니다. 철철이 총명탕을 먹이기도 하고, 몸에 좋다는 홍삼을 끊지 않고 계속 먹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몸에 좋다는 보약을 계속 먹.. 2020.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