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시, 짧은 소설)' 카테고리의 글 목록 (4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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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168

구원에 대한 명상 구원에 대한 명상 신이 인간을 대신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언제나 어떤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위해 대가를 지불할 수 있기 때문에 메시아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로 죽는다 예수가 죽을 때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도 같이 죽는가 신은 인간이 고통당할 때 정녕 그 장소에 부재하는가 신이 인간을 버리는 순간에만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인간이 신으로서 죽는 순간 신의 부재를 향해 스스로 부르짖는다 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죽음과 고통, 신의 은총으로 인간이 스스로를 용서하는 방식 대가 없는 용서는 거짓이며 타자에 의한 구원은 지옥이다 신이 부재하는 빈자리 그리스도가 예수가 될 때 .. 2023. 1. 10.
기도에 대한 명상 기도에 대한 명상 나의 의지와 소원이 깡그리 파괴될 때,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미리 방어막을 세울 것 나의 욕망이 패배하고 신의 뜻이 승리할 때 분노하지 않도록 미리 항복선언문을 써둘 것 기도…… 미래의 종말을 예언하는 유언장 2023. 1. 9.
[창작시] 합창교향곡 합창교향곡 어둠의 뒤편에서 서서히 빛이 떠오른다 아니다 어둠 스스로 내파하면서 빛을 열고 있다 어둠을 밀어내고 빛이 얼굴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자신을 부수고 쪼개고 산산이 흩어진다 어둠의 얼음을 깨트려서 빛의 봄을 만든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도 하늘이 진동하고 바다가 출렁이고 땅이 흔들린다 슬픔을 넘어 기쁨이 오는 것이 아니다 슬픔은 스스로를 깨트려 기쁨을 쏘아올린다 아픔과 고통을 견디고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는 폭발하면서 생명을 꺼낸다 젊음의 푸른 잎은 조각조각 떨어지며 백발을 꽃피운다 웃음은 아이들의 몫 생의 희열은 어른들이 차지한다 아무리 큰 아우성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침묵은 소리를 숨기고 있다 함성으로 가득 찬 침묵 음악뿐인 고요 신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통곡 살아 있다는 것은 살.. 2023. 1. 8.
[창작시] 백조의 노래 백조의 노래* 네가 없는 집을 빛이 비춘다 한때 눈부시게 밝았던 사랑의 장소 스물네 시간 음악이 흘러나온다 피아노는 스스로를 연주하고 죽은 사람은 부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나의 눈물은 냇물이 되어 너에게 가닿을 수 없는가 강물이 되어 너를 덮을 수도 바다가 되어 너를 가득 채울 수도 왜 없는가 벗을 수 없을까 우주보다 더 무거운 네 영혼을 서른 한 살 삶은 무엇을 원하는가 죽음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너는 떠났고 나는 늙었다 삶은 사랑 없이 나이를 먹는가 사랑 없이 살아 있다는 죄를 묻고 묻는다 guilty guilty 백조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하는가 허망한 삶을, 죽음의 희열을 부르는가 너는 없음으로 내게 빈 자리를 만든다 공백은 말한다 너만이 유일하다 처음이면서 마지막 초혼 너는 나와 .. 2022. 12. 25.
[창작시] 라 보엠 La Boheme 라 보엠 La Boheme* 청춘은 가장 슬픈 계절이다 후안 미로의 빛나는 별도, 여인도 없다 새들은 먼 도시로 떠났다 가난은 청춘의 기념품이 아니다 춥고 텅 빈 방에서 쓰러져서 운다 젊음은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사랑이 세상 최고의 가치일지라도 돈을 벌어다 주지 않고 죽어가는 연인을 살릴 수 없다 청춘의 계절은 멋쟁이 코트로 버틸 수 없는 겨울이다 텅 빈 방에서 연인이 피를 토하고 탕진한 시간이 종말을 맞는다 청춘의 미학은 시를 써서 채울 수 없는 흰 공백 푸른 하늘이자 붉은 노을 종착역 없는 가능성의 무한대 병든 사랑의 불가능성 제비다방에서 죽은 날개 없는 이상과 닭 스무 마리를 먹고 살고자 했던 유정의 봄날이다 오지 않는 봄 두 번씩 지연되는 미래 날씨가 화창해서 슬픈, 서늘한 빛과 .. 2022. 12. 18.
[창작시] 소리와 성스러움 ― 첼로 2 소리와 성스러움 ― 첼로 2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연장* 아파트 단지 인근 상가 4층 관객은 서른 명쯤 검은 야마하 피아노 한 대 무대 왼쪽 귀퉁이에 처박혀 있고 천장에 바람막이를 설치한 에어컨이 달려 있다 네모반듯한 공간은 미술품 전시장 같다 무대와 객석은 바짝 붙어 있고 첼로를 앞에 둔 연주자는 정사각형 부조물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앉아 있다 오늘 연주곡목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검은 반소매를 길게 늘인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 40대 여성 연주자는 수도승의 풍모를 띤다 지나치게 심각한 표정 눈의 거의 감겨 있고, 흘러내린 앞머리가 얼굴 한쪽을 가리고 있다 그녀는 활을 몇 번 움직여 첫소리를 들어보더니 곧바로 연주를 시작한다 눈은 고요하게 감긴 채 기도처럼 울리는 악기의 몸 소리는 낮고 깊고 거.. 2022. 11. 27.
[창작시] 슬픔 1029 슬픔 1029 좁은 골목에 슬픔이 걸어들어옵니다 작은 골목에 아픔이 스며듭니다 슬픔이 쓰러져 눕습니다 다른 슬픔이 덮습니다 아픔이 누워 소리칩니다 더 크고 깊은 아픔이 덮습니다 슬픔이 함박눈처럼 쌓이고 아픔이 겹겹이 짓누릅니다 푸른 망토를 두른 호박 머리 붉디 붉은 희고 흰 청춘, 꽃들! 한 뼘의 땅에 누워서 잠들고 다시 일어서지 않습니다 꿈은 모두 달아났습니다 미래는 과거를 향해 돌아섰습니다 슬픔에 슬픔을 아픔에 아픔을 아무 말할 수 없는 마음에 술을 붓고 기억에 불을 질러도 깨어날 수 없습니다 1029 없는 날이었으면…… 역사가 되고 만 없는 날 2022. 11. 6.
[창작 시]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 잠시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 잠시 사랑이 충만해져 있을 때 가슴에서부터 목까지 차올라 숨이 가쁠 때 지옥의 종소리가 가물가물 들릴 때 그 시간 모차르트는 어디 있는가 사랑이 온몸을 지배할 때 쇼팽은 무엇을 연주하는가 키 작은 베토벤은 사랑과 무관한 척 불멸의 표정을 짓는가 사랑은 왜 입술에서 터져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차분히 가라앉는가 오케스트라가 정렬하고 지휘자가 인사를 한 뒤 가수들이 등장하면 오페라가 시작된다 몇 초 전까지도 나는 지드의 쇼팽노트를 읽고 있었다 인후염을 앓는 아내가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다 오늘밤 우리는 모차르트의 기쁨과 베토벤의 격정과 스트라우스의 3박자 강물을 체험할 것이다 사랑한 후에 쇼팽의 나른한 우울에 잠시 젖을까 토스카, 사랑은 어떻게 죽음을 선택하는가 선한 사람이 고통받을 때 .. 2022. 10. 24.
[창작시] 마음이라는 물질적 존재에 관하여 마음이라는 물질적 존재에 관하여 어둠은 차츰 심장을 파먹고 폐로 쑥 들었다가 나며 죽음 근처로 장기들을 옮기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은 장기들 사이에 숨은 마음이란 것뿐이었다 마음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물질이었다 마음이 불멸하는 영혼일지 모르지만 마음은 늙고 병들고 아프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없지만, 있는 인간에게 몸이 있는 한 마음은 흔적을 남긴다 언제나 침묵하고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으며 썩고 찌들고 쪼그라들지만 진단하고 수술할 수 없다 만질 수 없는 물질 불태워 없앨 수 없는 물질 한순간 죽었다가 늘 거듭나는 물질 고결한 영혼도 천박한 감정도 아닌 사람이 살아 있으면 언제 어디든 같이 숨 쉬면서 몸이 죽어가는 시간에도 시퍼렇게 생생하게 그 몸의 시간을 증명하는 몸이 죽을 때 같이 죽어서 몸이 .. 2022.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