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시, 짧은 소설)' 카테고리의 글 목록 (19 Page)
본문 바로가기

창작글(시, 짧은 소설)168

416 꽃들에 바침 꽃들 파란 꽃들 바다에서 지다 꽃들 노오란 꽃들 바다에 피다 꽃들 파도를 먹다 꽃들 심연에 눕다 꽃들 눈물과 피로 빚은 파도 말을 멈춘 바다 꽃들 붉은 산처럼 시퍼런 바다 꽃들 지다 2020. 5. 27.
눈 내리는 날 목천 골목으로 눈이 내리고 배달부는 힘겨워 한다 어젯밤 내린 눈 위로 바퀴 자국이 길에 내고 그 위로 다시 눈이 덮인다 눈이 오는 날에도 먼 곳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하고 전기세 물세 고지서도 온다 택배 상자 위로 눈이 떨어지고 배달부 머리를 적신다 눈은 공평한가 짚신도 우산도 안녕하신가 아들 걱정 많으신 어머니는 평안하신지 2020. 5. 25.
커피와 담배 숨을 잠깐 참어. A가 말했다. B는 입을 다물고 숨을 참았다. 담배 연기가 코에서 조금씩 새어나갔다. 기침이 날 것 같았다. 이제 숨을 길게 뱉어. A가 다시 말했다. B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입에서 연기가 퍼져나왔다. B가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을 때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B는 거의 담배를 피지 않는다. 그 뒤로 그가 마신 담배 연기의 양은 몇 숨 되지 않았다.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가 있다. 짐 자무쉬. Coffee And Cigarettes, 1986. 몇 몇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들며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그게 다인 영화. 그게 다여서 흥미로운 영화. 그래서 더 지루한 흑백영화. 짐 자무쉬 3대 영화, 천국보다 낯선, 데드맨, 커피와 담배. 그는 이 영화를 198.. 2020. 5. 24.
江, 너머 저편 죽은 새들이 날아와 앉는다 강 저편으로부터 썩은 바람이 분다 강은 모든 것을 나누고 나머지를 데려온다 늙고 삭고 버려진 것들 강 건너 저편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흰 나비 떼들이 떨어진다 하늘 중턱으로부터 낙원에 도달하기 전 새하얗게 발에 밟힌다 발은 맨발이어야 한다 나비 비늘로 분칠하고 순결해지는 사람들 그들의 신체에서 발이 가장 환하다 졸음이 온다 미래가 온다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과거가 착색된다 꿈에서 나는 솔로몬 왕이다 생시에는 고치 속 벌레다 배춧잎에 매달려 0.1mm를 달린다 강 건너 저편 새, 바람과 나비 알 수 없는 것들과 만난다 사람의 몸은 더 깊은 잠에 든다 잠의 폭력에 생을 박탈당한다 게으른 자가 빈손으로 죽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것은 상서로운 일이다 그들만이 강.. 2020. 5. 24.
Two Some B가 말했다. the foot가 발마사지 하는 데야? 아니, 신발가게야. 아, 난 몰랐어. 웃기려고 한 소리야? 웃겼니? 바보 같았어. 날씨가 더웠다. 그들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건너편 멀리 떨어진 빌딩 4층인가 5층에 더푸트샵 간판이 눈에 띄었다. A는 왜 신발가게가 건물 6층에 있는 것일까 의아했다. B는 발을 흔들면서 Die Blendung을 읽다 말다 하고 있었다. Die Blenduing이란 어둠 속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갑자기 마주한 사람의 눈이 순간적으로 머는 현상을 뜻하는 독일어였다. 그 책이 출간된 1935년 독일에서는 나치가 죽음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얼마 뒤 유태계 이민자였던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는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 2020. 5. 24.
[창작 시] 19 아들은 2020년 스무 살이 되고 그해 봄 대학에 들어갔다 다만 개학이 2주간 미뤄졌고 PC방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마저 지루해졌다 친구들은 졸업식도 입학식도 못한 채 꽃 한 송이 없이 방에 틀어박혔다 세익스피어 비극을 다 읽고 정의란 무엇인가 논쟁했지만 모든 게 외국으로부터 온 전염병 때문이었다 사이비 종교단체 집회를 다녀온 사람들이 서로를 전염시켰다 심판은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스무 살이 되면 행복한 인생과 작별한다 그리운 19 아들은 자기 스토리를 마르고 닳도록 래핑하면서 석 달 열흘을 보낸 뒤 대학 기숙사로 향했다 아내가 울었다 그녀의 기쁨이 끝났다 나는 언제나처럼 여기 없는 듯 모든 상황을 바라보았다 2020.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