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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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커피와 담배

by 브린니 2020. 5. 24.

 

숨을 잠깐 참어.

A가 말했다.

 

B는 입을 다물고 숨을 참았다. 담배 연기가 코에서 조금씩 새어나갔다. 기침이 날 것 같았다.

 

이제 숨을 길게 뱉어.

A가 다시 말했다.

 

B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입에서 연기가 퍼져나왔다. B가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을 때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B는 거의 담배를 피지 않는다. 그 뒤로 그가 마신 담배 연기의 양은 몇 숨 되지 않았다.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가 있다. 짐 자무쉬. Coffee And Cigarettes, 1986. 몇 몇 사람들이 테이블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들며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그게 다인 영화. 그게 다여서 흥미로운 영화. 그래서 더 지루한 흑백영화. 짐 자무쉬 3대 영화, 천국보다 낯선, 데드맨, 커피와 담배. 그는 이 영화를 1986년과 1989년에 2, 3탄을 연속으로 만들었다. 꽤 애착을 느낀 모양이다. 커피와 담배에서 사람들이 지껄여대는 모습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서 어설픈 갱단 조직원들의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대화 내용보다는 그저 떠들어댄다는 의미에서. 오가는 말들이 별다른 뜻이 없다는 데서. 의미 없는 말들을 지껄여대는 것. 인간이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행위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다는 식으로 마구 떠들어댄다. 자기는 절실해서 지껄이는 말 중에 쓸 만한 것은 몇 퍼센트나 될까. 어쩌면 사람이 하는 말들이 다 의미를 지닌다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의 귀가 찢어지거나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저 인사로, 간단한 안부를 묻는 말 따위, 겉보기 평가나 남을 씹는 말,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궁금한 걸 캐는 말, 시시껄렁한 농담들,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내뱉고 들으면서 사람들은 친밀해진다. 밤 새워 속엣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눈 뜨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나 그 말 때문에 뒤통수를 맞는 경험도 있다. 말은 굳이 깊은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는, 그저 호흡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숨을 참아. A가 말했을 때 B는 숨이 턱 막혔고, 곧 죽을 것 같았다. 순간 화재 현장에서 연기를 들이마시고 질식해서 죽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곧 그런 상상은 날아가고 곧바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어떻게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고, 연기를 먹고 내뱉는 행위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는가. 연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은 불과 수 초. 담배 연기는 춤처럼 황홀하게 발생했다가 소멸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사람을 중독시키고 매혹한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고 처음으로 남자가 되었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고독이 타서 연기로 날아간다고 말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후, 불어서 몽땅 다 내뱉는다. 연기와 함께 스트레스도 날아간다고 착각하기 때문일까. 어쨌든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나면 속이 좀 풀린다. 담배는 그래서 끊을 수 없다. 제발, 건강에 해롭다느니 하는 말은 여기서 빠져주기 바란다. 복지국가라 자부하는 스웨덴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엄격하게 몸 관리를 한 사람들과 술, 담배 등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산 사람들 중 누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는지 실험한 결과, 맘대로 산 사람들이 더 간강하고 장수했다는 얘기는 그저 카더라 뉴스만은 아니다. 사실 인간이 행하는 것들 중 건강에 유익한 게 얼마나 있을까.

 

아직도 담배를 피우지 않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군. 책은 눈이 빠지도록 읽으면서 말이야.

연기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떻게 마셔서 없애버릴 수 있나.

그저 바라보고 감상만 하겠다는 건가.

예술적인 것은 좀 떨어져서 느끼는 게 올바른 감상 태도야.

자, 이제 한 대 피워.

 

A는 30년 만에 B에게 담배를 권했다. B는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A가 권하는 담배를 받아들었다. 두 사람은 카페의 발코니에 있는 흡연석에 앉아 있었다. B는 마치 오래 전부터 담배를 피워왔던 사람처럼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아주 조금씩 뱉어냈다. A는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를 띠며 B를 바라보았다. A는 골초에 커피광이었다. 하루에 두서너 갑은 기본이고, 커피 역시 몇 잔을 마시는지 셀 수 없었다. B는 담배는 거의 입에 대지 않고, 커피도 하루에 한두 잔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커피에서만큼 A에 뒤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커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것이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커피가 없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었겠는가.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다른 그 무엇에 양보하고 싶지 않다.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이 땅에 식물을 창조하신 신께 감사와 영광과 경의를 바친다. 정말 오 마이 갓!

 

커피는 초콜릿만큼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조금 쓰기까지 하다. 그러나 달콤한 인생에 커피가 빠질 수 없다. 행복을 떠올릴 때도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과 더불어 커피 한 잔을 떠올리는 것은 이제 시그니처 컷이 되고 말았다. 상상 속에 있는 사진 한 장. 그것에 커피가 없다면 한순간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커피는 진하고 깊고 쓰다. 어린 친구들은 한 모금 마시고는 미간을 찌푸리거나 머금었던 것을 내뿜고 만다. 진한데 깊지 않으면, 깊은데 쓰지 않으면, 쓰기만 하고 진하지 않으면 커피가 아니다. 3박자 모두 갖추지 않으면 커피는 초콜릿이나 사탕보다 못하다. 2% 부족한 커피는 달콤한 행복과 거리가 멀다.

 

커피는 그저 별 의미 없이 마실 때 가치가 있다. 안녕, 커피 한 잔 할까. 아침 일찍 한 잔, 저녁 만찬 후 짧게 한 잔, 졸음이 쏟아질 때 한 잔. 너와 길게 말하고 싶을 때 한 잔, 마라톤 회의 중간에도 커피 한 잔. 술은 몇 병씩 마셔도 풀 수 없는 피로를 커피는 단 한 잔으로 해결한다. 몸은 몰라도 기분은 그렇다. 우울한 사람도 한 잔. 그럼 최소한 죽지 않고 아직, 조금은, 삶을 버틸 것이다. 술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곧잘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커피는 평화롭다.

 

커피는 음과 리듬을 불러온다. 커피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스팅Sting의 노래들이다. 뉴욕의 밤과 와인이 생각나기도 하지만(특히 'Englishman in New York'이 그렇다.) 대낮이나 저녁까지는 커피에 잘 어울린다. 예전에 스팅Gordon Matthew Sumner이 베이스를 쳤던 더 폴리스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도 담배 연기처럼 커피와 절묘하게 섞인다. 재지하면서도 레게적인 리듬이 사람을 잔잔하게 흔든다. 그 노래 역시 깊고 진하며 약간은 씁쓰름하니까. 그래서 커피는 인생과 가장 닮았다. 인생은 한 번으로 족하며 언제나 깊고, 진하다. 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커피의 향은 금세 날아간다. 그러나 온 공간에 퍼진다. 마시는 사람의 코끝에서 금세 없어지지만 그 사람을 둘러싼 주위는 모두 커피 향으로 물든다. 담배 향이 끽연자의 몸에 오래도록 진이 배는 것과 달리 커피 향은 몸 밖에서 사람을 적신다. 그런 면에서 커피는 비와 어울린다. 창밖에서 내리는 비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푹 젖는 것처럼. 커피, 비 내리는 날씨, 카페 2층의 창밖, 그리고 스팅의 음악과 손가락 사이에 끼인 담배. 그렇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내쉬는 모든 호흡들이 깊다.

 

B는 요즘 자신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고 있다고 느낀다. B는 자신의 인생이 통째로 날아가는 경험을 했고, 7년이 흘렀다. 유태인의 법에 따르면 노동자도, 땅도 7년이 되면 안식한다. 노동도 경작도 1년 동안 쉼을 얻는다. 그는 무려 7년간 쉬었다. 인생 한복판에 거대한 구렁이 생긴 것이다. 7년 뒤 세상에 나왔을 때 그에겐 A뿐이었다. 스무 살에 담배를 가르친 A를 30년 만에 만난 것이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A는 단박에 가끔 그를 알아보았다. 며칠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왔고, 가끔 그의 집 앞까지 찾아와 커피를 한 잔씩 나눴다. 고교시절 친구가 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첫날, 30년 만에 만났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소리치며 신기해하면서.

 

감옥에 살면 뭐가 가장 힘들지?

A가 물었다.

B는 침묵했다.

A는 염치없이 계속 물었다.

감옥을 나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아니면 밖으로 나가서 마주할 세상? 잃어버린 사람들? 날아가 버린 재산과 명예 따위? 도대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할 수가 없어.

미안해. 대답할 게 없어. 네가 물어보는 건 너무 거창해.   

B가 대답했다.

그럼 뭐가 제일 생각나?

아, 커피!

 

A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별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라는 듯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감옥에서도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해. 그것도 내가 아는 사람이 거기 살았다는 게.

 

A는 B에게 그럼 이제 뭘 하며 살 것이냐고 몇 번을 물었다. 그때마다 B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고 대답했다.

 

7년 노동하면 1년 쉰다는데 7년 감옥살이를 한 사람은 1년을 또 쉬는 거야? 그동안에도 세상살이를 쉬었는데. 그게 무슨 개같은 경우야.

죽음을 살았으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러니까 좀 쉬어야지.

B가 웃으며 대답했다.

 

B는 커피를 리필했다. 그는 이 집 커피를 사랑했다. 커피숍 이름이 ‘두 사람의 집’이었다. B는 A와 대화하는 게 자신과 말하는 것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수십 년 만에 누군가와 진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고독은 그를 늙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골초 A보다 늙은 것은 아니었다. 육체와 정신은 다른 시간을 살기 때문이다. B는 A가 자기보다 커피를 더 즐긴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물론 A 자신은 담배를 더 즐긴다고 말하겠지만. B는 A가 수없이 몇 갑씩 피워대는 담배와 뜨거운 커피와 아이스커피를 몇 잔씩 번갈아가며 마시는 게 좋았다. A의 인생이 엑티브하고 드라마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들었다.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저돌적인 모습이 멋졌다. 겉으로 전혀 닮지 않은 A의 인생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친숙했다.

 

B가 감옥에 있으면서 본 게 하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인생이었다. 아니, 사람 그 자체였다. B는 그동안 자기 자신만 보며 살았다. 그런데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위에 널려 있었다. 그들도 이미 거기 살고 있었다. 그러나 B는 타자를 발견했으나 수많은 타자 속에서 늘 고독했다. 그런데 A와는 커피와 담배를 함께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커피와 담배라는, 서로의 인생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매개가  있어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B는 A와 헤어지는 길에 며칠 뒤에는 자신이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몇 마디쯤 생길 거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A는 기대하겠다고 대답했다. B도 스스로에게 기대를 품었다. B라는 남자가 들려줄 조금 다르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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