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소리와 성스러움 ― 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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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시] 소리와 성스러움 ― 첼로 2

by 브린니 2022. 11. 27.

소리와 성스러움 첼로 2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연장*

아파트 단지 인근 상가 4

관객은 서른 명쯤

검은 야마하 피아노 한 대 무대 왼쪽 귀퉁이에 처박혀 있고

천장에 바람막이를 설치한 에어컨이 달려 있다

네모반듯한 공간은 미술품 전시장 같다

무대와 객석은 바짝 붙어 있고

첼로를 앞에 둔 연주자는

정사각형 부조물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앉아 있다

오늘 연주곡목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검은 반소매를 길게 늘인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

40대 여성 연주자는 수도승의 풍모를 띤다

지나치게 심각한 표정

눈의 거의 감겨 있고,

흘러내린 앞머리가 얼굴 한쪽을 가리고 있다

그녀는 활을 몇 번 움직여 첫소리를 들어보더니 곧바로 연주를 시작한다

눈은 고요하게 감긴 채

기도처럼 울리는 악기의 몸

소리는 낮고 깊고 거침없으며

검객의 칼날처럼 단호하다

표면을 긁는다기보다 오장육부를 향해 훅 들었다가 난다

느릿느릿, 가볍지만 결의에 찬 발걸음으로

프롤로그를 넘어 구도의 길로 접어든다

구도자는 눈을 뜨지 않는다

몸은 검은 정물을 담은 수묵화처럼 정요하다

그녀는 잠든 채 연주하고 있다

그림에서 소리가 뿜어져 나와 객석을 스며든다

목이 드러나는 짧은 단발머리에서 흘러내린 머리칼이

눈을 가리고 광대뼈를 가르고 코끝에 걸려 흔들린다

검게 늘어뜨린 메트로놈

그녀의 몸이 춤을 춘다

소리는 공연장으로 한바퀴 휘돌고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벽을 두드리고

사람들의 뇌와 가슴을 열고 영혼 어딘가를 훑고 떠난다

소리에 끌려 사람들은 천상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바흐는 17세기 대성당 구석쯤으로 사람들을 몰고 간다

구도의 길은 서른 명의 신도들과 함께 길게 이어진다

천국의 계단을 걷는 허공의 발걸음

몸은 공중에 뜬 채 내려오지 못한다

음악은 물기 없는 검은 구름을 사람들의 발밑에 깔아놓는다

첼로는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

악기 밖 바람의 소리까지 담고 울린다

그림이 출렁인다

정물이 움직이고

그림 속 인물이 캔버스를 들락거리며 소리지른다

1781년에 태어난 첼로는 300년간 다른 사람의 손을 타고

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세 시간에 걸친 구도의 길

소리가 끝나는 곳에서 어떤 신성이 빛나고 있는가

구원이란 신이라는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끝없이 변화하는 것

잃어버린 성스러움을 되찾기 위해

태초의 소리는 묻는다

사람아 어디 있는가

소리는 한 숨도 밖으로 이탈하지 않고

내부에서 내부로, 울리고 울리고 또 울린다

구도자는 선포한다

소리는 당신 안에서 소리를 낸다

소리는 밖에서 고요하다

내 속을 가득 채우는 소리와

스스로의 성스러움뿐

 

 

 

*김민지 첼로 리사이틀 2022. 11. 20 MEG홀

 

(3) [안디무지크] 김민지ㅣ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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