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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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 잠시

by 브린니 2022. 10. 24.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 잠시

 

 

사랑이 충만해져 있을 때

가슴에서부터 목까지 차올라 숨이 가쁠 때

지옥의 종소리가 가물가물 들릴 때

그 시간 모차르트는 어디 있는가

사랑이 온몸을 지배할 때 쇼팽은 무엇을 연주하는가

키 작은 베토벤은 사랑과 무관한 척 불멸의 표정을 짓는가

사랑은 왜 입술에서 터져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차분히 가라앉는가

 

오케스트라가 정렬하고

지휘자가 인사를 한 뒤 가수들이 등장하면 오페라가 시작된다

몇 초 전까지도 나는 지드의 쇼팽노트를 읽고 있었다

인후염을 앓는 아내가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다

오늘밤 우리는 모차르트의 기쁨과 베토벤의 격정과

스트라우스의 3박자 강물을 체험할 것이다

사랑한 후에 쇼팽의 나른한 우울에 잠시 젖을까

 

토스카, 사랑은 어떻게 죽음을 선택하는가

선한 사람이 고통받을 때 어째서 신은 잠자코 있는가

질다, 사랑은 왜 죽음을 희생하는가

어떻게 인간이 신을 대신하는가

산투차, 사랑은 왜 죽음으로 부정되는가

인간은 날마다 죽는데 신은 기어이 부활하는가

오페라, 신 앞에서 인간의 통곡

 

오페라, 프리마돈나에게 영광을!

사랑은 소멸하고 죽음의 재만 남는다

 

결말을 알고서도 막이 오르고 무대가 밝아지면 한껏 기대를 한다

통곡하는 소프라노와

허세에 찬 테너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 바리톤

바람을 몰고왔다가 데려가는 80명의 오케스트라

서곡과 간주곡, 피날레

침묵이 없는 음악의 향연

마약 같은 세 시간

 

사랑은 더 깊고 짙게 무르익어서

대성당의 종소리처럼 멀리

다른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고 없을 것이다

 

 
*토스카 :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여주인공 
*질다 :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산투차 :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여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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