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안개
본문 바로가기
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시] 안개

by 브린니 2022. 10. 11.

안개

 

 

새벽에 안개뿐이었습니다

두텁고 짙고 깊은

빽빽하고 촘촘히 짠

구름 속을 걷는 느낌

 

그날 아침엔 안개가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가리고

피부에 스며들었어요

이러다 곧 심장과 폐를 갉아먹을 듯

 

불안과 약간의 공포에 젖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볼 수 없는 먹먹함

 

그날 아침 우리는 어디를 가고 있었던 것일까요

 

증평에서 외박을 나온다는 사내를 기다렸던 것일까요

한참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습니다

안개가 전파를 삼켜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군에서 젊은 남자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저 옛말일까요

조금 늦을 뿐

사내는 구릿빛 단단한 얼굴로 웃으며 나타날까요

 

안개 때문에 기대와 기다림은 발이 묶여 초조와 긴장으로 바뀝니다

 

종이로 빚은

결코 썩지 않고 빛이 바래지 않는 꽃다발은

희미하게 반짝거립니다

 

생생하던 꽃들도 전쟁의 비참을 견딜 수 없지만

종이꽃은 비록 

반쯤 산 듯

죽음을 몰아냅니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사내가 문자를 보내옵니다

살아 있다고

곧 만나자고

 

안개 때문에 마음이 소동을 일으켰지만 우리는 곧

어린 사내를 만날 테고

반갑게 얼싸안을 것입니다

 

사랑은 불안하고 위태롭게

우리를 평화와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비록 길이 멀고

끝이 보이지 않지만

사랑은 조잘거리는 내비게이션처럼 우리를

신성한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할 테고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