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비 오는 날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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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시] 비 오는 날의 산책

by 브린니 2022. 10. 10.

비 오는 날의 산책

 

 

공원의 흔들 벤치는 늘 비어 있고

비어 있어서 여유롭습니다

 

쓸쓸하거나 허전한 것과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홀로 있는 듯한

고독이 아닌 스스로 있음입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지만

바람을 타고 나아가고 들어섭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멈춰 있습니다

 

그동안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요

누군가 걸터앉아 좀 더 세차게 흔들리기를

혹은 요람처럼 사람을 편히 재우기를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나무처럼

수백 년 늙어가기를

 

시간이 그를 흔들지만 오늘도 그냥 지나칩니다

그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노을이 지날 때 가장 절정입니다

바닷가에 놓여 있는 그네 의자는

사람을 태웁니다

 

석양 한가운데로 위태롭게

사람은 한점 풍경으로 소멸합니다

 

그는 불붙는 시간 동안 흔들리면서 동시에

정지 상태로 시간을 거스릅니다

그는 저녁에만 청춘을 삽니다

 

비 오는 날 그는 더욱 고요합니다

천둥과 벼락 속에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춤을 추면서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서성입니다

 

그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해변을 걷는 중년 남녀를 봅니다

인생의 목적을 두고 끝없이 정진하는 삶도

아름답지만

 

그 어디에도 집착 없이 삶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일은

거룩합니다

일상에 충실하면서도 한 발 떨어져 여유롭게 남을 도울 수 있다면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삶이 피 터지는 싸움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것이 그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공원 의자는 앉을 이유가 숱하게 많지만

비워두고 가끔 한번 쳐다봐 주는 것으로 족하니까요

 

비 오는 날 그는 푹 젖어서 맑은 날 오실 손님을 기다립니다

굳이 오지 않기에 더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의 미래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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