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 주말 오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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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창작 시] 주말 오후 풍경

by 브린니 2022. 9. 4.

주말 오후 풍경

 

 

춘천에서 반가운 사람들이 노래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곧 태풍이 오는데 그곳은 평온할까요

주말 늦게까지 일하고 세 시간을 달려가야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니

돌아올 일이 아득하고 먼 곳에서 밤을 새우자니 걱정이 앞섭니다

그냥 가까운 바다에 가서 바람 부는 것을 구경할까 망설입니다

일하다 보면 짜증날 때가 있어 훌쩍 떠나고 싶어집니다

 

서울의 첼로 공연이나 다른 도시의 오폐라

음악은 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신 앞에서 통곡하거나

신이 인간에게 하는 말씀을 고요히 듣거나

음악은 세상 너머로 잠시 데려다 놓습니다

 

바다를 보려면 저 산을 넘어야 합니다

산은 굽이굽이 길들을 풀어놓고,

길섶엔 벼가 자라고, 복숭아, 토마토, 샤인머스켓 재배 농가,

아이들이 없는 초등학교와 덩치만 큰 교회와

천년 묵은 사찰도 거느리고 있습니다

 

태풍은 어디쯤에서 화를 내고 있을까요

나라님이 영 어설퍼서 혼을 내시려는 걸까요

동서고금을 둘러봐도 대자연을 이길 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은 그저 겸손해야 할 따름이죠

가난할 때를 기억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지나온 날들을 아름답게 하고

오늘 이 시간을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은 사랑과 존중으로 돈독해집니다

 

고흐가 그린 구부러진 삼각형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오면, 바다입니다

바다를 두른 도시는 넉넉하고 풍성하고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인공모래로 둥근 성을 쌓아올립니다

서양의 휴양지를 본떠 지은 퓨전 음식점 앞에 가짜 야자수를 심어놓았습니다

외국 도시에 온 듯한 싸구려 감성에 푹 젖도록 잘 연출됐지요

젊은 시절엔 일부러라도 오지 않았을 테지만

나이 들고서는 그저 바다를 보러 온 탓에

사람들이 저질러놓은 사소한 잘못이나

동의할 수 없는 취향에는 너그러워집니다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지성은 세상 정치에나 쓸모가 있으니까요

 

해변에 흰 피아노가 한 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줄이 끊어져 차고 딱딱한 소리를 내지만

신성한 침묵의 노래를 반주하려는 듯합니다

해변이 차차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생의 짙은 떨림을 노래하는 남자가 부르는 유행가를 듣습니다

 

병든 뮤즈는 트림을 하며 음식이 너무 쓰다고 아파합니다

도무지 국적을 알 수 없는 음식은 속을 태웁니다

커피에 뜨거운 물을 더 붓고

과일 주스엔 차가운 물을 더 넣습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선 세례받을 때처럼 물을 부어야 하는 것일까요

 

무언가를 자꾸 용서받아야 할 것 같은

전쟁 같은 아픔이 시를 쓰는 개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어쩌면 날마다 속죄와 속량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주말이니까 모른 척 넘어가면 안 될까 생각합니다

 

돌아오는 길은

노을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차를 몰고 들어가기

충혈된 눈으로 빛을 끌어당기기

하늘에 구름을 비벼놓기

노을은 인간을 대신해 통곡합니다

대신 울어주고 아파할 자연 만물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노을병을 앓는 아내를 보듬어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뿐입니다

지금은 개의 모습을 덮어쓴 인간이 곁에 붙어서 낮게 짖고 있지요

 

살아 있으니 아플 수 있다!

오늘은 쓸쓸한 가을이 시작되는 첫 날입니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으니

집을 단속해야 합니다

특히 늘 어지럽고 산란한 마음부터 먼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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