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시, 짧은 소설)'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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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168

에드워드 호퍼 2 에드워드 호퍼 2 흘러가는 길 위에서 호퍼는 생각한다 멈춰선 호퍼에게서 내면이 흘러내린다 풍경에 서서 집(안)을 바라보는 시선(들) 실내로 들어선 풍경들 건물들에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고 오전 7시의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 선착장 노동자들이 남겨둔 수레와 공장 굴뚝의 연기 여름한나절 일요일 이른 아침 혹은 오전 11시 호텔방에서 편지를 읽는 여자 2층 테라스에서 신문을 든 남자 이야기는 숨어 있고 인생의 수수께끼는 풀기 어렵다 거리와 공원, 철도역, 항구와 닿은 집들 사람들은 어디서나 북적이지만 그림에선 지워진다 텅 비어 있는 심연의 외곽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밖을 내다보는 한 사람 그리고 동시에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알 수 없는 시선 I after me 단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그린다는 것 .. 2023. 6. 25.
에드워드 호퍼 1 에드워드 호퍼 1 에드워드 호퍼를 보러가는 길 길이 꽉 막혔고 심장이 요동치는데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데 다스린다는 말은 피지배인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고속도로가 막히고 자동차를 버리고 싶을 때 헬기택시를 부르고 싶을 때 생각한다 호퍼 이후에 무엇이 있는가 현대인들의 소외를 심각하게 파헤쳤던 모던과 포스트모던 예술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현대인들은 새장에 갇힌 채 이제 그저 인생을 즐기며 다른 생각이란 멈춘 것인가 새장을 벗어나 고생했던 자유의 추억을 벌써 부정하는가 젠더와 그린과 생태를 너머 도달한 것이 메트릭스란 말인가 아무것도 없는 믿어야 할 가치 싸워야 할 대의명분 감정을 다 소진하는 미친 사랑 아무것도 없는(모든 것을 다 갖춘) 사막의 메타도시 오직 초자아의 즐기라는 명령에 복종하는 욜로족들의 꿈에 .. 2023. 6. 25.
베토벤 베토벤 침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자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달아나 불안과 소외 속에서 내면의 소리에만 귀기울였던 집 속의 여행자 그의 얼굴은 경련에 떨었다 잘 짜여진 형식에 저항하는 일그러짐 기쁨과 향락의 느낌 너머 음율의 단호함 그의 귀는 숭고한 다른 세계로 떨어져 나갔다 어느 화가가 자신에게서 귀를 떼어놓았던 것처럼 빛이 없는 세계에서 상상할 수 있겠는가 소리 없는 진공에서 친구를 부를 수 있는가 아무것도 들을 수 없고 그 어떤 깨달음도 방해할 수 없는 칠흑같은 성스러움 믿음만이 태고의 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침묵을 들을 수 있는 자 침묵을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자 세상을 굽어보며 비통에 잠긴 신의 침묵을 2023. 6. 8.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는 보이는가 음악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문자는 눈에 띄지만 언어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가 내 사랑은 늘 꽃 피지만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는가 사랑한다는 세상의 거짓말들은 매혹하는데 음악은 말의 옷을 입고 소리로 가슴을 친다 시는 노래하거나 미를 그린다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몇몇은 음악을 사유한다 내면의 성찰로 발견한 빛을 외부로 내던지는 소리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품을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모든 눈들을 삼켜버린다 시와 음악과 그림과 조각상 혹은 여인들 보이는 아름다움에 눈이 머는데 숨은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그리워한다 신의 아름다움! 2023. 6. 7.
[창작시] 바다의 색 바다의 색 바다는 속도와 흐름에 따라 노란색을 띤다 붉지도 맑지도 않은 어정쩡한 색 혹은 황금이 되려고 지금 막 달아오르는 색 인간 내장 냄새를 지닌 파도와 거품과 모래가 붉은 피와 섞이기 직전 하늘로부터 미끄러지는 누런 빛덩어리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세상에 누렇게 황달이 낀다 늦은 오후와 저녁 일몰 사이의 빛깔 욕망이 절정으로 치닫기 전 잠시 멈춘 틈 누런 고름이 바다와 모래와 사람을 병들게 한다 여인들만이 잠시 휴식한다 나무 뿌리 사이 넓적한 바위 사이 모래와 파도가 겹치는 곳에서 그녀들은 떼를 지어 누워 있다 여자들끼리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무성의 자연이 여인들을 낳고 여인들이 낳는다 야생 동물이 여인의 품으로 들어온다 여인은 죽음을 끌어안는다 두려움 없이 사랑하라 표범과 황소와 고래와 이야기를 나.. 2023. 5. 29.
[창작시] 인생이란 인생이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차가 몹시 흔들렸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었다 배꼽 아래가 아릿했다 자이드롭에서 떨어질 때처럼 맨땅으로 추락하는 느낌이다 아내는 내가 입은 셔츠가 추레하다고 짜증을 냈다 그럴 때마다 머리가 쭈뼛하면서 쥐가 났다 인생이란 알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영웅이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악담을 들으면 한없이 초라해진다 상처는 사랑과 깊이 맞닿아 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 사랑은 돌이킬 수 없다 고속도로는 정체와 회복을 반복했다 서민들의 경제와 비슷했다 풀리는가 싶으면 다시 막혔다 아들은 6개월 뒤 제대한다 자취를 시작하고 고시를 준비해야 한다 돈이 많이 들 것이다 부모들은 돈보다 아들을 걱정한다 사랑이 더 깊고 무거울 것이라 믿는다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낭만이 없는 비 .. 2023. 5. 27.
[창작시] Close To You Close To You 사랑하는 당신 나는 당신께 가까이 가지 않아요 당신과 친밀하게 거닐지도 못해요 난 그저 내 몸을 보살피고 내 감정을 돌봐요 내 마음의 슬픔만 부둥켜안고 살지요 아, 사랑하는 당신 그런데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께 기대고 당신께 빌고 당신의 노래를 원해요 이토록 이기적인 마음을 당신은 아끼고 보듬고 어루만져요 간혹 가치 없는 물건처럼 당신을 내버려두는데 당신은 한결같아요 사랑이란 부풀려지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가만히 두어도 오래도록 고스란히 남아서 꽃피우는 것일까요 얼마나 신비로운가요 당신이 내 곁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사랑이 깊은 바다처럼 나를 감싸요 정말이지 언제나 어디서나 아무 곳에도 당신이 없을 때 비로소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마음 한복판에 계신 당.. 2023. 5. 21.
[창작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꽃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너무 아름다워서일까 소소한 이야기에 마음이 쓰인다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아서일까 어린 청춘을 보면 슬프다 푸른색이 고결해 보여서일까 작은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것을 보면 경기장에서 함성이 들려올 때처럼 피가 솟는다 사람도 작아서일까 흑장미를 말려두었더니 품위 있는 흑기사가 되었다 아이들은 식물이 많은 집에서 꽃보다 귀하다 아이들이 꽃송이 하나 하나 소리내 세며 웃는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군에 간 아들은 키가 한뼘이나 더 자라고 몸이 단단해졌지만 면회 온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재롱을 떤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역류성 식도염에 먹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 마음이 시리다 사랑해서일까 2023. 5. 14.
[창작시] 숨결 숨결 내가 내뱉은 숨은 어딘가를 향해 흘러가고 거기 들러붙는다 다른 숨을 만나 엉긴다 숨, 결이 된다 물과 물이 어울리듯 바람이 바람에 섞이듯 숨 한 겹 거칠고 가쁜 깊고 긴 감정의 숨이 자동차 옆자리 그대 찬손에 닿아 숨, 둘 이웃이 된다 2023.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