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글(시, 짧은 소설)' 카테고리의 글 목록 (7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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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168

창작 시 <봄비 풍경> 봄비 풍경 봄비가 후두두둑 떨어집니다 봄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세상은 온통 꽃비 그림 얼룩집니다 살구꽃 지고 그 비에 철쭉이 핍니다 그 사이 꽃잎 시체를 밟고 당신이 오시지 않나 물색없는 마음이 널뜁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든 아직 없는 당신 당신 없이 죽지 못하는 불멸하는 생이 매우 밉습니다 바람은 꽃을 몰고 또 어디로 가서 불가능한 소식을 전하려는 것일까요 비는 여기 얼마나 머무를까요 비 그친 뒤 좁은 골목 끝에는 햇살 좋은 집 한 채 있습니다 사랑舍廊부터 문간방까지 볕이 속속 들어 그림자 없이 물방울을 녹입니다 비에 젖은 세상이 점점 뒷걸음질 칩니다 당신을 처음 보는 그때로 헛헛 어려집니다 2022. 5. 2.
[창작 시] 투섬 - 두 사람의 집에서 투섬 - 두 사람의 집에서 케이크는 예뻤다 트러플 블루베리 치즈 무스는 보라색과 흰색 갈색이 층층 어울렸고 검정색 알갱이가 박혀 있었다 케이크는 빛깔처럼 맛있지 않았다 속았다는 느낌보다는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돈이냐 사랑이냐를 선택해야만 할 것 같았다 돈이 많으면 사람이 딸려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랑은 옵션도 사은품도 아니지 않는가 사랑과 사람은 한끝 차이도 아니고 이웃사촌도 아니다 그들은 자주 배신한다 사람이 변하는 건지 사랑이 옮겨다니는지 어차피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는 미완성이다 맞은편 커플은 행복하다 속삭이며 입을 맞췄다 가을 단풍은 노랗고 붉게 창밖을 그려놓았다 나는 부러웠다 만끽할 수 있는 기쁨을 허락받은 신의 아이들이 커피와 노을과 비, 그리고 키스 혼자 책을 읽고 있던.. 2021. 10. 31.
[창작 시] 생의 그늘 생의 그늘 주차장 그늘에 차를 세워두었는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바람에 차는 가을 햇살에 무방비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인생을 조금 편하게 살려는 의지는 늘 산산히 부서졌다 주말마다 책 읽으러 가는 카페는 일부러 출입구를 여러 개 만들어 놓아서 화장실 갈 때도 길을 잃는다 지구와 태양과 같은 무지막지한 존재가 개인의 삶과는 무관하다 싶어도 춥고 덥고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는 일상사에 속속들이 간섭한다 세상사 의미가 차고 넘치고 비통한 인생을 끌어안느라 오페라 보고 교향곡 듣지만 집안에서 벌어지는 날카로운 실내악엔 속수무책 사랑하면서 사는 일 참 녹록지 않고 아름다움이 생의 아픔에서 피어난다 그늘에 스며들어 도리어 인생을 다독이다 2021. 9. 4.
[창작 시] 무더위 무더위 바람을 세 겹 썰어 이불을 누비네 옷소매 바짓가랑이 사이 어렴풋한 기억에도 밀어 넣네 머릿속을 휘젓다가 문득 발견하는 흔적 없는 상처 바람은 몸속 어디 숨은 마음을 바깥으로 데리고 오네 어린 시절 나는 찌는 날씨에 평상에 엎드려 땅에서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열기를 보면서 정신을 잃었네 수십 년이 지나 2021년 8월의 어느 일요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2층에서 나는 흑인소녀가 되어 물결 위를 날아다니네 바람은 죽음과 불멸을 반복하는 저녁을 연주하네 서늘하고 깊은 어둠을 갈망하지만 세상만사 불붙고 있네 산과 들과 강물과... 아, 바람이 불타고 있네 2021. 8. 24.
[창작 시] 스며들다 스며들다 너에게 조금씩 스며들고 있어 너의 공간을 꽉 채우겠어 나는 없고 네 속엣것만 남겠어 설탕이 물에 녹듯 (아, 달콤해) 맛을 내는 물질이 된 걸까 사랑, 네 안으로 항해 깊푸르게 스며들다 이윽고 바다가 되는 것 ‘너’라는 이불을 덮고 행복한 잠에서 깨는 새벽아침 이슬은 풀잎에 맺혔다가…… ‘푸름’만 남고 연이어 스며드는 사건들 내가 너에게 너는 다른 네 속에 세상이 텅 비게 될까 integrity! ; 투명하게 맑다 육체, 내면과 같아지다 2021. 7. 11.
[창작 시] 안녕 ; 손의 시간 안녕; 손의 시간 손에 묻어 있던 시간들이 빠져나갔다 다만 손을 살짝 들어올려 인사를 하려 했을 뿐인데 나의 온 과거가 한순간 후두두 떨어졌다 너에게 매달려서 결코 놓지 못했던 시간은 손의 주름들 사이 숨어 살았다 비좁고 여린 실금들 사이 흔적도 상처도 없이 배어 있었다 시간은 소문 없이 인생을 지배했다 나는 아직 너에게 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미래는 삽시간에 사라졌다 너에게 다 내주었던 먼지도 이끼도 없이 곰팡이 피지 않은 불멸의 시간들이, 달아났다 단지 인사를 하려던 것뿐인데 2021. 6. 29.
[창작 시] 첨잔 첨잔 슬픔에 슬픔을 더 붓습니다 시체를 시체로 덮는 전장 같습니다 마음에 술을 붓습니다 숯불을 쏟은 듯 태웁니다 수많은 이유와 변명들을 마른 땅이 쩍 갈라지듯 인생이 세운 가설들이 무너집니다 어쩌면 신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생을 허락하셨던 것일까요 욕심을 쌓을 창고가 부족해서 숲을 다 태웠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발끝을 들고 하늘을 만져보았습니다 사치와 향락과 도취 어리석음의 끝을 먹고 마셨습니다 술이 반쯤 든 잔에 술을 조금 더 부어 마시는 것이 첨잔이라지요 술을 넘치도록 따르는 것은 마음이 비어서일까요 술이 흘러 상을 적시고 몸이 흥건히 젖고 밤이 익고 혹 사랑도 깊이 숙성할까 바람을 가져서일까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으나 단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저기 구석에서 울고 있습니다 인생이 반쯤 달아.. 2021. 6. 13.
[창작 시] 예술가 전성시대 예술가 전성시대 이삼십대 중초반 누구나 인생의 전성기를 맞네 예술에 미치거나 민주투쟁에 복무하거나 사랑에 정신 못 차리거나 나이 들어 무엇이 되어 있을까 상관없이 인생을 즐기네 세월은 저만치 달아나 인생을 어두운 곳에 남겨두었네 청춘의 빛은 다른 곳에서 타오르고 있었네 내 손에는 찬란했던 불의 흔적뿐 지천명 지나 흐린 눈으로 아이다와 토스카 140년 된 어린 피카소를 만나네 과거는 망각 없이 귀환하네 저글 없는 더블링 인생이 승승장구 빛났더라면 다시 청춘을 만나는 게 어색하지 않을까 높은 의자에 앉아 옛 친구의 방문을 맞이한다면 나는 헐벗은 채 고향으로 가네 그림 그리던 고씨 형제 바이올린 켜는 집시들 지구멸망을 재던 측량사 시대에 저항하는 록큰롤 전사들 인생을 다시 살아보네 빈손이니까 겸손하게 왕의 갑.. 2021. 6. 8.
[창작 시] 서울 서울 몰락한 자들이 돌아온다 이름을 빼앗긴 자들이 귀환한다 신발을 잃어버린 자들도 이곳은 고향이 아니다 죽은 자들이 온다 두 번 죽기 위하여 늙은 자들이 오페라를 보러 온다 대성당 시대의 장엄과 호사를 기억하기 위하여 없는 자들이 없는 얼굴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 사이로 도래한다 유령들은 미래로부터 온다 냉동 보관된 시간의 한 토막이 떨어진다 침몰했던 사건이 드러난다 은폐된 죄책감이 민낯을 붉히고 욕망은 지성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한때 추악한 범죄자들 참회하는 자들 용서 없는 고해를 반복하는 자들 삼손과 다윗과 요나답의 후예들 몰락한 이주자들 모두 호명을 기대하며 벗은 발로 문이 열리길 빈다 아무도 너를 부르지 않는다 초혼을 침묵이 덮는다 예외로 버려진 자들 한꺼번에 집결한다 계속되는 보복과 부관참시 존재가.. 2021.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