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린니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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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옴 웨이크필드 <사랑의 기술> 노옴 웨이크필드 노옴 웨이크필드의 은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세상적인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구별하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자칫 우상 숭배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자기만족적인 사랑(에로스)에 빠질 때 발생하는 수많은 관계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 세상적인 사랑은 내게 만족과 유익을 주는 것에 기준을 둔다. “아내가 언제나 남편이 원하는 일을 하고, 또 그가 원할 때마다 그것을 해준다. 아내가 남편을 행복하게 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한 아내는 남편에게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자기만족적인 사랑은 오히려 증.. 2023. 9. 23.
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 연옥의 탄생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을 기억한다. 정말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질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과학적인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왠지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종교적인 답변이 있지만 과연 그럴까, 의심을 한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부모의 사랑 때문이지만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의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가는가. 육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가. 영혼이 불멸한다면 그 장소는 어디인가. 인류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이 질문에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죽은 뒤의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와서 그곳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 설령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온 사람이 있다고 한들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 2023. 9. 19.
[명시 산책] 진은영 <아름답다> 아름답다 오늘 네가 아름답다면 죽은 여자 자라나는 머리카락 속에서 반짝이는 핀과 같고 눈먼 사람의 눈빛을 잡아끄는 그림 같고 앵두향기에 취해 안개 속을 떠들며 지나가는 모슬린 잠옷의 아이들 같고 우기의 사바나에 사는 소금기린 긴 목의 짠맛 같고 조금씩 녹아들며 붉은 천 넓게 적시다가 말라붙은 하얀 알갱이로 아가미의 모래 위에 뿌려진다 오늘 네가 아름답다면 매립지를 떠도는 녹색 안개 그 위로 솟아나는 해초냄새의 텅 빈 굴뚝같이 ―진은영 【산책】 사람들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낄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어떤 것을, 어떨 때, 어느 곳에서 사람들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이 다르고 아름다움의 대상도 다를 것이다. 사랑을 아름답다고 할 때 그것은 매우 추상적인 동시에 지독하게 구체적.. 2023. 9. 18.
이병우 <오후만 있던 일요일> (ft. 어떤 날, 들국화) : 아름다운 노랫말 13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하얀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 한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 비가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이병우 ★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80년대 금요일은 휴일이 아니었다. 토요일도 오전에는 학교에 가거나 직장에서 일했다.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부터 휴식을 할 수 .. 2023. 9. 17.
[명시 산책] 김기택 <오지 않은 슬픔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오지 않은 슬픔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급히, 멈춘 전동 휠체어가 갑자기 나타난 계단 내리막길을 쳐다보고 있다 어떻게 내려갈까 눈과 목이 계단과 휠체어 바퀴를 번갈아 살펴보고 있다 내려갈 생각을 하기도 전에 심장은 엉덩이에서 쿵쾅쿵쾅 흔들린다 아직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머리통과 팔다리는 벌써 굴러가다 넘어지고 있다 계단 모서리에서 미리 튕겨 나간 숨소리는 불규칙한 직각이다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내려가는 발이 보이는 평범한 계단 길 둥근 발바닥이 굴러 내려가려 하면 경사는 더 가팔라지고 직각은 더 날카로워지는 울툭불툭 계단 길 계단 지름길을 앞에 두고 되돌아가는 동안 바퀴 소리가 통, 통, 통, 가보지 못한 길을 저 홀로 내려가고 있다 계단 길 내려다보던 눈을 그 자리 그대로 두고 돌고 돌아서 온 평탄한.. 2023. 9. 16.
막스 피카르트 <인간과 말> 인간과 말 사람과 쇠파리의 유전자 구조는 생각보다 그렇게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과 파리의 삶은 하늘과 땅만큼 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어떻게 해서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다르게 지금과 같은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며 살 수 있었을까. 지능으로 말한다면 사람은 개와 고릴라와 돌고래와 같은 포유류 동물들과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인간이 이룩한 것과 동물들의 삶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것은 바로 인간은 말을 할 수 있고, 다른 생명체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말을 한다는 것이 단지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말을 할 줄 알기에 지식을 전달할 수 .. 2023. 9. 12.
[명시 산책] 김기택 <낫> 낫 안쪽으로 날이 휘어지고 있다 찌르지 못하는 뭉툭한 등을 너에게 보이면서 심장이 있는 안쪽으로 구부러지고 있다 팔처럼 날은 뭔가를 껴안으려는 것 푸르고 둥근 줄기 핏줄 다발이 올라가는 목이 그 앞에 있다 뜨겁고 물렁한 것이 와락 안겨올 것 같아 날은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있다 ―김기택 【산책】 안쪽으로 날이 휘어지고 있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고 했던가. ㄱ자는 바로 서 있고, 낫은 좀 구부러져 있으니 모를 수밖에. 낫은 누군가를 찌르지 않게 안쪽으로 살짝 구부러져 있다. 아주 미세하게 안쪽으로 말려 있어서 곧게 뻗어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낫은 안쪽에만 날이 서 있다. 그러나 벼를 벨 수도 있고, 물론 사람의 목을 벨 수도 있다. 그러나 칼이 있는데 낫은 무기로서는 점수가 낮다. 낫은 .. 2023. 9. 11.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불안의 서 Livro do Desassossego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 는 페소아가 생각하고, 느끼고, 본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페소아는 철학자도, 몽상가도, 탐험가도, 환상을 보는 자도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해당하기도 한다. 페소아는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며 여럿인 동시에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자신이 아닌 다른 자기 자신이라고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인식한다. 자신이 다른 이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아닌 다른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모든 것은 ‘나 자신’에 집결되어 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되어 있고, 나를 느끼고 ‘내가 누구인가’ 묻고 답하고 되묻고 회의하고 의심한다.. 2023. 9. 9.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 부끄러움 La Honte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소설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말다툼 끝에 밥상머리 앞에 앉았지만 “어머니는 연신 아버지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아버지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식탁에 묵묵부답 앉아 있었다. 그러나 돌연 발작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고 숨을 가쁘게 내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탁한 목소리로 악을 쓰고는, 내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붙잡고 식당으로 질질 끌고 나왔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인지 목덜미인지를 틀어쥐고 있었다. 아버지 손에는 나무둥치에 박혀 있던 전지용 낫이 들려 있었다.” 나는 “아빠가 내 불행을 벌어.. 2023.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