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없다 : 진짜 교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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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교회는 없다 : 진짜 교회 2

by 브린니 2024. 1. 28.

교회는 없다 : 진짜 교회 2

 

 

느헤미야 형제는 무거운 마음으로 단에 올라서서 말씀을 시작했다.

 

어느 형제분이 건강검진에서 당뇨수치가 높다는 얘기를 듣고 가까운 내과병원을 찾아가 재검진을 받았습니다. 그 형제분 이름을 A씨라고 부르겠습니다. A씨의 혈당은 100을 조금 넘었습니다. 의학적으로 당뇨병 전단계 수준이었습니다. 의사는 당화혈색소 수치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A씨의 당화혈색소 수치는 6%를 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A씨는 거의 정상 상태였습니다. 다만 혈당이 정상보다 조금 높았을 뿐이었습니다. 혈당은 100 이하는 정상, 126부터 당뇨병 진단, 당화혈색소는 5.7% 이하 정상, 6.5%까지 당뇨 전단계, 그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고 합니다. 혈당은 핏속에 있는 당의 수치를 뜻하며, 당화혈색소란 적혈구가 얼마나 당화했는지 나타내는 %입니다. 6%라면 적혈구 100개 당 6개가 당으로 오염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혈구는 3개월이 넘으면 생명을 다하고 소멸되며 다른 피로 교체된다고 하니 3,4개월에 한 번씩 당화혈색소 검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A씨의 경우 당뇨가 그리 높지 않고, 전단계 수준에서도 당뇨병 위험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A씨에 맞는 처방은 식단을 조절하고, 하루 30,40분 넘게 운동을 매일(3회 이상) 꾸준히 하라고 강력하게 말하는 정도면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는 당뇨병 전단계니까 당뇨병으로 전환되기 쉬우니 약을 먹고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아주 작은 알약 하나를 처방받고 약국에서 약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식단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을 했습니다.

 

몇 달 뒤 A씨는 호전되었고, 혈당은 90 이하, 당화혈색소는 6%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의사는 약을 처방했고, A씨는 의사의 말에 순종하는 마음을 약을 받아왔고, 운동하고, 식사도 조절했습니다.

 

몇 달 뒤 의사는 이제는 거의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말했고, 운동이나 식사조절을 너무 심하게 하면 오히려 저혈당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에서 타온 약을 다 먹자 A씨는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굳이 병원을 다시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몇 달 뒤 왠지 당이 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병원을 찾았더니 혈당이 140 정도가 나왔습니다.

의사는 약을 끊으면 혈당이 올라가니 약을 잘 먹으라고 하고는 다시 약을 처방해주었습니다.

 

그 뒤로 거의 8년 동안 A씨는 병원에 다니면서 3, 4개월에 한 번씩 혈당과 당화혈색소 검사를 하고, 약을 받아서 나왔습니다. 집으로 와서는 약 먹고, 식사조절, 운동, 이렇게 나름대로 당뇨 관리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물론 당뇨에 좋다는 영양제도 어느 정도 먹으면서 말입니다.

 

8년째 되는 어느 날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지난 1년 동안 당화혈색소 수치가 7%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알게 모르게 합병증이 시작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그동안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으면 약의 함량을 높여야 한다고 몇 번 말했을 뿐 별다른 조치가 없었고, 진료시간은 겨우 2, 3분이었고, 당뇨에 관한 지식이나 관리 방법에 대해서 설명한 적도 없었습니다. 저혈당이 올 수 있다고 스스로 말해놓고도, 그게 뭐냐고 물으니 간호사에게 물어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A씨는 그동안 당뇨에 대해 연구를 하거나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약 잘 먹고, 식사조절하고 운동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도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런데 의사가 이런 식이면 당뇨합병증에 걸리고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하니까 뭔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A씨는 유튜브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에도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보면서 당뇨 지식을 대충 얻었고, 필요한 영양제를 소개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각성을 하고 나서 보니 좀 더 다르게 보였습니다.

 

우선 당뇨병과 당뇨합병증에 대한 위험성을 실감하게 되었고, 당뇨는 평생 달고 가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당뇨병도 졸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당뇨와 관련된 여러 지식과 인슐린 저항성 검사나 다른 검사 역시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A씨는 내가 도대체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받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A씨는 간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해서 간초음파 검사를 받은 적도 있어서 간장약을 몇 달 먹었고, 비타민D가 부족하다고 해서 두어 달 복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 결과지를 받고 의사와 상담을 했습니다. 검사지는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 한 번에 알 수 없었기에 항목별로 의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인슐린 저항성 검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우리병원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A씨는 지금 먹고 있는 약의 성분에 대해서 물었고, 의사는 얘기가 너무 길어진다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당뇨에 대해 더 잘 알려면 내분비내과에 가서 알아보라고 덧붙였습니다.

 

A씨는 마지막으로 요즘에 발끝이 화상 당한 듯 벌겋게 달아오르고 발이 저린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자신은 당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면서 자신은 소화기내과 전공이니 당뇨는 내분비내과 전공의에게 상담하라면서 가까운 병원을 알려주었습니다.

 

A씨는 부지런히 메모를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다음부터는 다른 병원으로 가보세요. 이번 약이 떨어지면 여기 말고 내분비내과 찾아서 가세요.”

 

A씨는 너무나 당황해서 알겠다고 말하고는 병원을 나왔습니다. ”

 

느헤미야 형제가 말을 멈추었다.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A씨는 너무 당황해서 진료비를 내지도 않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1초도 더 이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A씨는 운전을 하고 집으로 가면서도 그저 멍할 뿐이었습니다. 8년 동안 제대로 한 번도 당뇨에 대해 상담해준 적이 없는 의사가 환자가 진지하게 병에 대해 물으니까 자신은 소화기내과 전공이니 내분비내과 전공의에게 가보라며 병원에서 내쫓았으니까 말입니다.

 

A씨는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당뇨환자를 받지 말았어야 하지 않은가. 당뇨는 내분비내과가 전공이니 내분비내과로 가라고 조언했어야 하지 않은가. 첫날 진료 때 당뇨는 약을 잘 먹고 조절을 잘 하면 건강한 사람보다 더 오래 잘 살 수도 있는 동반자 같은 병이니 너무 걱정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8년 동안 환자가 별로 호전되지 않고, 자신의 병세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지 이제와서 자신은 전공이 아니니 전공 의사를 찾아가라고 말하는 게 도대체 의사가 할 말인가. 그동안 검사비, 진료비 다 받아 챙겼으면서 이제 와서 환자가 당뇨에 대해 진지하고 파고드니까 대답할 수 없어서, 혹은 대답하려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아니면 단지 귀찮아서, 이제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말라고 말한다는 게 무슨 경우인가.

 

8년을 환자를 봐왔으면서 단 한 순간에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말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만약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할 경우라면, 작은 병원에서 해결이 안 되는 중증일 경우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경우라면 소정의 절차를 밟아 환자에게 예의 바르게 사정을 말하고 해당 병을 잘 볼 수 있는 병원으로 의견서를 첨부해서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A씨는 정말 화가 나고 억울하고 황당했습니다. 그래서 알고 지내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A씨는 느닷없이 8년 동안 진료받던 병원을 떠나 새로운 병원을 알아봐야 했고, 8년 동안 호전되지 않았던 당뇨와 다시 싸워야 했습니다.

 

A씨는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병원이라고 별 차이가 없을 것이 확실했습니다. 좀더 친절하고, 좀더 세밀하게 환자를 돌보고, 상담을 잘해주고, 당뇨를 잘 관리하는 요법을 가르쳐줄 수 있겠지만 당뇨병을 낫게 할 수 없을 테니까요. 당뇨란 결국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였으니까요.

 

A씨는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으로 당뇨약을 먹어도 당뇨가 치료될 수 없고, 당뇨 관리가 잘 되기도 어렵고, 더 나아가 당뇨약을 먹기 때문에 오히려 합병증에 더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병원에서 당뇨를 고칠 수 없을 바에야 이제부터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당뇨와 싸워나가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A씨는 자기 자신이 주치의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당뇨약을 끊고, 음식을 잘 먹고, 꾸준히 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당뇨약을 복용했기에 혈당은 조절하기 어려웠고, 병원에 가지 않았기에 자신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는지 더 나빠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A씨는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자기자신이 자기의 주취의가 된다면 혹시 나빠지더라도 결코 억울하지 않을 테니까요.

A씨는 더 이상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당뇨와 싸워 이기기로 마음먹고 지금도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내가 또다시 술렁이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가 느헤미야 형제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성도님들께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겠습니까? 혹시 여기 당뇨환자분이 계시면 도움이 될까 해서 말씀드리는 것일까요? 물론 그런 것도 없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정말 건강하셔야 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여러분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서입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목회자들이 A씨가 만난 의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장내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뇨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8년간이나 환자에게 약을 주고 이런저런 처방을 내리더니 환자가 당뇨에 대해 진지하게 물으니까, 몰라서든, 귀찮아서든, 고칠 자신이 없어서이든 상관없이 환자에게 화를 내며 더 이상 병원에 오지 말라고 말한 그 의사처럼, 지금 우리 목회자들도 성경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진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면서, 대충 설교하고, 성도들에게 이런저런 신앙의 조언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을 아닐까요.

 

그러다가 진지하게 신앙에 대해 고민하면서, 정말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하게 살아야 하는지 물으면 깊이 생각하면 오히려 마귀가 틈탄다고, 그저 목사말만 잘 듣고 따라오면 된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다가 성도가 교회를 떠나면 성도의 등 뒤에다 대고 목회자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다고 소리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장내가 오히려 아주 고요해졌다.

 

여러분, 성경에 대해 궁금하고, 신앙생활에 회의가 들 때가 없으셨나요? 목사님의 설교에 왠지 동의가 안 되고,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없으셨나요? 그래서 목사님과 상담을 하고 전화 통화를 했을 때 그런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었나요? 아니면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고, 목회자와 관계가 소원해진 적은 없었습니까? ”


장내에는 헛기침을 하는 사람, 한숨을 내쉬는 사람,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성도들이 고민을 얘기할 때 오히려 마귀가 틈탄다고, 더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믿음은 단순한 것이라고 가르침을 받아오셨나요? 아니면 목회자들이 성경을 깊이 있게 해석해주고, 신앙생활에 대한 고언을 아끼지 않았나요? 어느 쪽이십니까? 성도들이 고민에 빠지고 흔들릴 때 진짜 신앙에 대해 가르쳐주는 목회자를 만나보셨나요? 아니면 신앙생활엔 정답이 없고,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도들이 성경을 알고 싶어 인터넷이나 다른 교회나 선교단체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참석하면 이를 격려해주는 목회자들이 많을까요, 가로막는 목회자가 많을까요?

 

여러분, 성도분들 중에 몇 년 동안 신앙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말 한 마디 못하는 성도분들이 계십니까? A씨처럼 병에 걸렸는데 교회에서는 도저히 치유가 안 되는 분이 계십니까?”

 

장내는 아주 조용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술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코로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경고의 메시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코로나가 터졌을 초기에 어느 사이비종교집단에서 대규모 감염자가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경고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의 예배나 집회, 수련회 등에서 얼마나 많은 감염자가 나왔습니까? 예배는 신성한 것이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외치면서 예배 수호에 나선 분들도 있지만 성도들의 생명을 담보로 드리는 예배를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까요?

 

여러분 코로나가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였다면 그 내용은 무엇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교회 그 자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교회는 목회자와 제도가 교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교인이라고 불리는 성도들은 그저 예배라는 쇼를 구경하러 오는 관객에 불과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별로 재미있지도, 은혜롭지도, 유익하지도 않은 예배인데도 꼬박꼬박 각종 헌금을 내면서 말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A씨처럼 환자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병원에 돈을 갖다 바치는 사람처럼 교회에 헌금을 무수히 내지만 영육간에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병자들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성도 여러분들은 교회에서 제대로 된 성도 대접을 받으시면서 신앙생활하시나요?”

 

장내는 더 고요해졌지만 더 크게 요동하고 있었다.

 

저는 지금까지 기존 교회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의 교회가 죽고, 지금과 전혀 다른 교회를 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그 자체이므로 더 이상 이런 식의 교회는 없어도 된다는 것이 저의 결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을 때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만인제사장이었습니다.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이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목회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성경을 연구하고, 누구나 설교할 수 있고, 누구나 다른 이웃에서 사랑을 전하고, 신앙생활을 돕고, 구제하고 선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직자들만 보던 성경을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고 성경을 인쇄해서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우리 개신교가 도리어 성경연구와 가르침과 배움 등을 목회자들이 가로채고 있지 않습니까? 성도들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가르치고, 나누는 일은 금기시 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독재하는 교회가 진짜 교회일까요? 그 목회자들은 진짜 성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목회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살고 있을까요?

 

바울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성도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빼앗고, 기회를 없애고, 성도들끼리 말씀을 나누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질문하는 성도들에게는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거나 딴생각을 하면 마귀가 틈탄다고 하거나 목회자를 비방하면 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바보로 만들고 병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자신들보다 천배나 더 지옥자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천국문을 닫고 자신도 못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막는 것입니다.”

 

장내는 더욱 조용해졌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A씨와 같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왠지 분하고 원통하지 않습니까? 교회를 수십 년 다녔는데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왜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가운데는 알고 있다고 믿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너희가 본다고 하니 장님이다, 안다고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이 A씨가 아니라면 여러분은 자기 영혼이 병들어 가고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잘 모르는 게 아닐까요?”

 

느헤미야 형제는 장내를 둘러보았다. 성도들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점점 성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버거워하고, 귀찮아하고, 세상 풍속을 따라 떠났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성경읽고, 기도하고, 더 열심히 교회에 모여서 예배해야 한다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말세에 사람들이 모이기를 폐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성경에도 이미 기록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코로나의 메시지 정반대를 말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유튜브, SNS, ZOOM 등의 매체를 이용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분들이 집에서 예배를 시청했습니다. 그러나 소규모로 서로 얼굴과 얼굴을 보면서 오히려 더 친밀하게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주고받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과학과 기술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을 이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제 무형의 교회도 교회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건물이 있고, 거기에 성도들이 모이고, 목회자가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시스템과 제도가 있는 교회, 그것만이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한 사람일지라도, 그가 어느 교회에 출석하지 않더라도, 그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하며, 혼자서라도, 언제 어디서든 예배한다면 그는 성도입니다. 아니, 성도일 뿐만 아니라 교회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에 드러난 코로나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흩어지는 교회를 뜻합니다. 무형의 교회를 뜻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되었을 때 우리는 목회자 없이 혼자 예배해야 했습니다. 그 누구도 없이 혼자. 그러나 가장 절실하게 예배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며 교회에 나가서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끝난 지금 우리는 예전처럼 돌아간 것이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예전과 다른(비록 잘 알지 못하지만)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 다시 나간다고 해도 그것은 같은 교회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문을 닫은 교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주로 개척교회들이죠. 성도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기에 헌금이 들어오지 않아 문을 닫은 것이다.

 

목회자들도 삶을 위해 노동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나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들도 성도들과 다름없이 주5일 동안 일하고 주일에 목회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대형교회들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멀쩡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대형교회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대형교회가 A씨가 다녔던 병원과 다를 바가 없다면 말입니다.

A씨가 다녔던 병원 역시 매우 성황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장내는 뭔가 짓눌린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 듯 했다.

 

문제는 성도들이 깨어서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어떤 뜻인지, 예수를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작은 예수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이며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전부가 문을 닫아도 그것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성도가 있다면 교회는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결코 한국기독교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짜가 아닌 진짜 성도, 그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면서 선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진짜 교회란 그런 것입니다. 목회자나 제도가 아니라 깨어있는 성도들이 서로 그리스도를 먹고 나누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진짜 교회입니다.”

 

느헤미야 형제가 말씀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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