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 훌륭한 왕이 살았다. 인품과 덕망이 높아서 백성들과 신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나라는 부강하고 태평했다.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모두 다 충신이었다. 그들은 왕을 충심으로 섬겼고, 이를 보상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높은 벼슬이나 명예나 부, 다른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저 왕을 잘 섬기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목적이었고, 밤낮 가리지 않고, 왕을 극진히 모셨다. 이른 아침부터 궁에 나와 왕이 밤사이 안녕하셨는지 살폈고, 삼시 세끼를 정성껏 준비하고 건강 상태도 꼼꼼하게 챙겼다. 왕은 충성스런 신하들을 보면서 마음이 든든했다. 왕 역시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충신들은 왕으로부터 들려오는 칭찬과 격려 말고는 다른 어떤 상급도 마다하고 오로지 왕의 영광만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았다.
어느 날 왕은 왕의 옷을 벗고, 백성들의 옷으로 갈아입은 뒤 궁 밖으로 나갔다.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평온해 보였고, 백성들의 생활도 활기차 보였다. 왕은 큰 거리에서 시장터, 사람들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들까지 돌아보았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왕은 술에 취해서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채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힘없고 가난하다고 말 한 마디 못 하게 하고 쫓아내? 그러고도 너희들이 관리야? 왕만 쳐다보고 있으면서 백성들을 돌보지 않는 게 벼슬아치라면 나도 하겠다. 궁궐 일이 바빠서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다니, 무슨 놈의 나라가 이 모양이야.”
노인에게는 뭔가 억울한 일이 있는데 관아에서는 이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왕은 노인을 일으켜 주막으로 데려가 재운 뒤 다음날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리고 노인과 같은 사람들이 더 있는지 알아보았다. 여러 사람들이 왕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호소했다. 왕의 신하들이 왕을 모시는 일에 열을 올릴 뿐 백성들은 잘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왕을 사람 하나 들고 날 정도로 좁은 골목으로 데려갔고, 거기에 버려진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술에 절어 땅바닥을 뒹구는 사람, 굶주려서 기진맥진한 사람, 병들어서 곧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왕에게는 충성하지만 정작 백성들의 어려운 사정을 돌보지 않는 신하들을 과연 충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왕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긴단 말인가.
왕은 화가 나서 신하들을 모조리 내쫓고 왕의 뜻을 헤아려서 백성들을 잘 보살피는 사람들로 바꿔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잠시 뒤 생각을 고쳐먹었다.
왕은 생각을 정리하고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여러분, 그동안 여러분들은 나를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여러분이 나를 돌보느라 지극정성을 쏟지 않아도 됩니다. 왕을 섬기려고 애쓰지 말고, 왕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왕의 뜻을 알고 행할지 생각해보십시오,”
왕이 말을 마치자 신하들은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은 대체로 이랬다.
우리들이 왕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했단 말인가. 우리가 왕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은 또 무엇인가. 왕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더 해야 한단 말인가.
왕은 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은 나를 훌륭한 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왕께서는 존귀하시고 온 백성의 기쁨이십니다.”
“온 백성의 어버이이시며 성은이 한량없으십니다.”
신하들은 저마다 왕을 칭송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왕은 부드럽고 인자한 웃음을 띠었지만 동시에 슬픔에 찬 표정으로 신하들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기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백성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내가 정말 훌륭한 왕이라면 왜 백성들이 울고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여기 있는 것은 나를 대신해서 내가 사랑하는 백성들을 잘 보살피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이제부터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들의 눈을 돌려서 백성들을 봐주십시오. 그것이 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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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에서 왕의 신하들은 왕에게 충성한답시고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오직 왕을 잘 섬기기에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왕에게 다른 이익을 바라지 않고 오직 왕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왕의 뜻은 왕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왕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왕에게 충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구약 성경을 보면 제사장이나 왕, 선지자 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제사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는다. 그들이 백성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제사에게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보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많은 성경구절은 하나님의 뜻이 제사나 종교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세상에 펼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잠언 21: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이사야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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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서도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제사를 핑계로 강도를 만나서 죽어가는 사람을 버려두고 떠난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저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어서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그를 돕는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묻고 있다.
제사에 목숨을 거는 것과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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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도 예배에 목숨을 건다. 이사야, 예레미야 시대 예배를 잘못드려서 망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예배에서 찬양이 중요시 되고 목숨 걸고 찬양한다. 설교는 하나님께 받는 것이지만 찬양은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고 내 삶을 드리는 것이므로 더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그래서 '다윗의 장막'을 현대 교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기고 심지어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교회를 세우고 있다.
진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길이 예배뿐일까. 예배가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목숨을 걸 정도로, 예배 말고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진짜 제사가 없는가, 하는 말이다.
잠언의 말씀처럼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닐까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말그대로 하나님을 사랑한답시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방향을 돌려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여기시겟다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는 것이 아닐까.
진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매주 드리고 있는 예배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제사나 예배와 같은 종교행위보다 인애(이웃을 사랑하는 것)를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히브리서 13장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선을 행하거나 구제하고 친교하는 것 모두 예배다.
찬양과 기도,헌금, 설교만이 예배가 아니다.
우리는 삶이 곧 예배다, 라는 말을 거의 매일 듣고 살지만 주일예배는 예배라고 생각하지만 일상생활을 예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그런데 우리의 거룩은 공식예배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즉 우리의 일상에서 증명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착한 행실이자 우리의 선한 삶이 아닐까
마태복음 5장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땅에 밝히보여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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