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소월 <진달래꽃> (feat. 길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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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소월 <진달래꽃> (feat. 길병민)

by 브린니 2022. 10. 13.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김정식) 1902~1934

 

 

산책

 

봄마다

산에

들에

길가에

담벼락 곁에

 

어느 곳

어디

사방천지에 피어나는 꽃

 

분홍빛

붉은 입술

발그레 달아오른 볼()

 

핑크사랑(하트)의 빛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빛깔의 꽃!

 

 

진달래꽃을 노래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시는 어쩌면 이별 노래가 아닌

사랑의 시가 아닐까.

 

이어령은 이 시가 미래형으로 쓰였기 때문에

현재는 그 내용이 정반대로 읽힌다고 말했다.

 

문장의 시제가 미래형이든 현재형이 상관없이

소월의 시는 역설로 가득하다.

 

시의 내용은 잊겠다는 것 같지만

결코 잊을 수 없겠다는 것이 <못잊어>의 정조이듯이

 

<진달래꽃>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아니라

절절히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일 수밖에 없다.

 

 

<진달래꽃>은 봄마다 우리 산과 들을 물들이는 분홍빛 꽃이다.

설레는 처녀의 마음과 같은 꽃이다.

 

분홍빛 꽃뿐만 아니라

피는 장소 그렇다.

 

티나지 않게

산등성이

길가

담 곁에 핀다.

 

그러나 숨어서 피는 듯하지만

진달래를 발견한 나그네는 눈을 뗄 수 없고

마음이 요동친다.

 

개나리와 어울려 피면 화려해 보이기까지 하다.

 

시집가는 처녀의 족두리에 꽂으면 좋을 듯한 진달래를

이별의 꽃으로 만들 이유가 있을까.

진달래를 즈려밟고 가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모질까.

어쩌면 꽃을 피해 꽃이 떨어져 있지 않은 땅을 밟으려고 뒤뚱거리며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라.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떠나는 남정네가 꽃을 밟지 않으려고 뒤뚱거리는 모습은 얼마나 우스울까.

 

떠나는 남편을 보면서 참고 인내하며 눈을 삼키는 모습은

조선시대 양반댁 안방마님에 가깝다.

 

민중 여인은 오히려 바지 끄덩이를 붙잡고 울고불고 야단일 것이다.

꽃을 뿌리고 갈 길을 축복하는 여인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리랑>에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노래하는 여인의 마음은

당신은 결코 나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진달래꽃>은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것은 깊고 절절한 슬픔일 수 있다.

그 사랑이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며

이 사랑의 시간이 끝나고 고통스런 이별이 올까 불안하고 초조하고 떨린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 온다면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오히려 꽃을 뿌려놓겠지만

 

당신은 그 꽃을 즈려밟고 갈 수 없으며

그 꽃은 당신의 길을 막아설 것이며

아무 말 않고

울지 않고

당신의 길을 바라볼 뿐이지만

 

사랑으로 불타는 진달래꽃과 같은 나의 마음을 당신에게 전할 것이다.

 

발병이 나서 돌아서든

길에 놓은 꽃 때문에 돌아서든

나를 버리는 님은

다시 내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나 신의 사랑을 상징하는 아가페와는 달리

남녀 간의 사랑(에로스)은 언제나 이별을 품고 있다.

 

사랑은 시작할 때부터 이별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청춘 남녀의 사랑은 이별과 샴쌍둥이다.

 

그러니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매순간 눈물이 넘쳐나는 슬픔이다.

너무 기뻐서 우는 눈물의 세레나데다.

 

그래서 어쩌면 이별이 닥친다면 울지 않고 눈물을 그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달래꽃>을 이별의 노래로 읽든

사랑의 시로 읽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랑에 빠진 청춘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고 흥분되고 긴장과 초조와 불안과 복잡한 심정인지 모른다.

이 사랑이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답을 알 수 없고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마음이 <진달래꽃>과 같은 명시를 탄생시켰을 것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 슬픔의 극치이자

매순간 감동의 눈물로 넘친다.

 

사랑의 기쁨은 행복을 노래하지만

그것이 영원할 수 없으리라는, 당연하게도 끝이 오리라는 마음은

그 자체로 매순간 슬픔이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순간

이별과 배신과 상처와 고통이 함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남녀 간의 사랑(에로스)이 지닌 탁월한 기쁨과 슬픔을

역설의 언어로 표현한 소월의 절창

<진달래꽃>사람 마음의 복합성을 기막히게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미묘한 마음의 감정을 노래하는 베이스 바리톤 길병민의 목소리로 진달래꽃을 감상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T7c8qcfv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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