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조용미 <알비레오 관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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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조용미 <알비레오 관측소>

by 브린니 2022. 8. 11.

알비레오 관측소

 

 

알비레오 관측소에 가서 별을 보고 싶은 두통이 심한 밤이다

 

거문고자리의 별을 이어보면 이상하게도 물고기가 나타나는 것처럼

지금의 나를 지난 시간의 어느 때와 이어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그걸 보려면 더 멀리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멀리 갔다 되돌아와도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지금은 단지 고열에 시달리고 있고 생의 확고부동과 지루함에 몸져누웠을 뿐이다

 

입술이 갈라 터진 것뿐인데 아는 말을 반쯤 잃어버린 것 같다

아무래도 좀더 먼 곳에서, 거문고자리의 물고기를 발견하듯 이 두통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일치하기 힘든 몸이고 살이다

알비레오 관측소까지 가야만 하는 고단한 생이다

 

아주 멀지는 않다, 두어 번 더 입술이 터지고 신열을 앓다 봄의 꽃잎처럼 아주 가벼워지면 될 것을

 

몸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다른 자리로 가버릴 수도 있다

살이 기억을 야금야금 잡아먹는다

 

나는 여기서 지난 슬픔을 예견하고 다가올 사건을 복기해보며 내게 주어진 고통과 대면하겠다

 

모든 통증은 제각기 고유하다 백조가 물 위를 날아가듯 천천히 여기, 이 자리에서 회복되고 싶다

 

조용미

 

 

산책

 

알비레오라는 관측소가 어디 있을까.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야지만 별을 볼 수 있을 테니

알비레오 관측소 어딘가에 꼭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에선 별을 선명하게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알비레오 관측소도 시골 어디쯤 있을 것이다.

 

 

두통이 심해서 별을 보고 싶은 것일까

별을 보면 두통이 나을까 싶은 것일까

 

두통이 심하면 머리에서 별이 터진다.

눈은 불꽃놀이를 원 없이 본다.

 

 

왜 별을 보고 싶을까.

별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왜 멀리까지 가서 기어이 별을 보아야만 할까.

별을 본다는 것은 지금 여기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본다는 뜻 아닐까.

 

예를 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고나 할까.

 

별을 보면서 미래의 나를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거문고자리의 별을 이어보면 이상하게도 물고기가 나타나는 것처럼

지금의 나를 지난 시간의 어느 때와 이어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거문고자리의 별들이 물고기자리로 변하는 것처럼

그때 그 사건 속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다르다.

 

어린 시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느 시기의 나는 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고통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까.

몸이 아프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마음의 병이 몸을 망가뜨릴 때부터?

아니면 너무 슬퍼서, 슬픔이 마음과 몸을 모두 넘칠 때?

 

 

두통이 심해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데

정신이 또렷해지는 어느 시점이 있다.

 

뇌가 아닌 어떤 정신!

 

정말 두통은 어디가 아픈 것일까?

뇌신경? 뇌세포?

 

정신은 뇌의 어느 부분일까?

뇌를 가로지르는 물질일까, 아니면 영혼?

 

정신을 차리자, 하고 말하는 것과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통증은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나 사람이 통증을 만들기도 한다.

 

근심, 걱정, 불안, 완벽주의자들은 대개 두통에 시달린다.

생각이 많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두통, 복통, 치통, 생리통, 갖가지 통증은 제각기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프다는 특징과 견딜 수 없이 괴롭다, 혹은 고독하다는 특징이 있다.

 

고통, 통증, 이런 것들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오직 나와 나눌 뿐이다.

 

아플 때 가장 고독하다는 옛말은 너무 흔한 말이지만

겪어보면 너무 절실한 말이 된다.

 

문득 샴쌍둥이의 두통은 어떻게 아픈 것일까 궁금해진다.

 

나눌 수 없는 머리,

나눌 수 없는 고통.

 

어제, 오늘 너무 두통이 심해서 별 볼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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