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행숙 <아침에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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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행숙 <아침에 일어나는 일>

by 브린니 2022. 8. 14.

아침에 일어나는 일

 

 

거의 잊혀진 것 같다

머리 하나를 두고 온 것 같다

 

머리가 두 개인 사람처럼

머리를 일으켰다

 

모든 게 너의 착각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헤어질 때

당신이 한 말

 

두 명의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간신히 한 사람만 안아 일으켰다

 

라디오 스위치를 켜고

어제와 똑같은 아침 방송을 들었다

 

 

김행숙

 

 

산책

 

아마도 실연을 당한 뒤의 삶에 대해 쓴 시 같다.

 

모든 게 너의 착각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헤어질 때

당신이 한 말

 

오해는 늘 큰 불상사를 일으킨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차갑게 돌아섰을 때

그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이유를 알기 위해 애쓰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잘 잊는 것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돌아섰듯 나도 잘 돌아서서 내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날을 잊듯 나도 그 사람을 잊고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거의 잊혀진 것 같다

머리 하나를 두고 온 것 같다

 

머리가 두 개인 사람처럼

머리를 일으켰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머리와

그 사람을 잊은 머리가 있다.

 

간신히 그 사람을 잊은 머리를 일으키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 사람을 잊지 못한 머리는 아직 침대에 누워 있다.

 

 

두 명의 사람이 누워 있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간신히 한 사람만 안아 일으켰다

 

연인과 함께 누웠던 침대에

여전히 연인이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나의 착각이다.

 

그러나 연인이 나와 함께 있다고 느끼는 환상은 어느 기간 동안 계속 될 것이다.

완전히 잊혀지는 데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아마도 사랑했던 깊이에 따라 잊는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머리도 두 개

몸도 두 개인 것처럼

 

내가 아닌 내가 하나 더 있는 것처럼

 

일종의 환상통 같은 것을 느끼며 매일 아침 잠에서 깬다.

그리고 간신히 두 개 중 하나만을 일으켜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은 가장 맞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새로운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은 끔찍한 고통일 수 있다.

 

그러나 그래야 삶은 계속된다.

실연 때문에 죽을 수야 없지 않은가.

 

매일 아침 멍하니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는 일

멍한 머리는

생생한 머리가 누워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라디오 스위치를 켜고

어제와 똑같은 아침 방송을 들었다

 

그리고 알람과 함께 시작되는

아침방송을 듣는다.

 

거의 매일 같은 뉴스가 반복된다.

오늘의 날씨는

정치, 경제의 상황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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