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문보영 <지나가는 개가 먹은 두 귀가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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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문보영 <지나가는 개가 먹은 두 귀가 본 것>

by 브린니 2022. 7. 12.

지나가는 개가 먹은 두 귀가 본 것

 

 

거리 한복판이다 사랑하는 사람 S에게 몹쓸 소리를 들은 Z의 두 귀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지나가던 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Z의 두 귀를 주워 먹었다 Z의 두 귀는 Z보다 먼저 죽어 천국에 도착했다 동시에 귀의 몸은 배 속에 남았으므로 Z는 개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평생 들어야 했다

 

너는 아빠가 누구니?

너무 작아요

정확히 어디에 사시죠?

설탕 단지 좀 건네 달라니까요?

 

와 같은 타인의 말은

 

개의 배 속에서 나는 소리로 들렸다

 

개의 배 속에서 나는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

 

죽은 귀는 먼저 가서 천국을 둘러보았다

 

1. 천사들

 

지우개 가루를 뭉쳐 회색 공을 만들 듯 죽은 이의 심장을 동글게 동글게 굴려 재활용하고 있다

 

2. 망원경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분리된 귀는

눈을 감았다 떠 보려 시도한다 그러자

앞이 보인다

낡은 방의 구석

천사들이 생선 더미마냥

쌓여 있다 그들은 얼굴을

TV처럼 틀어 놓고 자고 있다

어디선가

신이 나타나 그들의 얼굴을 꺼 준다

창가에는 고개를 수그린 오래된 망원경

귀는 망원경으로 지구를 관측한다

그것은 불 꺼진 도서관 모서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판기에 달린 반환구 모양이다

 

3. 교육

 

천국에서도 말벌의 치사 온도는 44.5'C이다 그곳에서도 삶에 필요한 기초 지식을 가르친다 귀는 받아 적는다

천국에서도,

배를 격렬하게 흔들어 대며 지독한 열기를 내뿜는 500마리의 꿀벌들에게 둘러싸인 한 마리의 말벌은 살아나갈 희망이 거의 없다

거기에도

응 지금 가고 있어, 처럼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대낮의 거리를

헉헉거리며 활보하는 이가 있다

 

4. 천국

 

천국에서도 무기정학 당할 수 있을까

 

나뭇잎 한 장이 살랑거린다

 

귀는,

귀만큼 죽은 Z의 나머지 부분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 얌전히

어디선가

마모가 진행되고 있다

 

5. 숟가락

 

생전에 무신론자였던, Z의 아버지는 죽어서도 무신론자였다 그의 아내가 식전 기도를 한다

 

당신... 신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밥상머리에서 남편은 숟갈을 허공에 내던지며 신에게

 

, 이 돌팔이야!

 

외친다

 

반동 세력은 어디에나 있어서 세상이 삐그덕 삐그덕 굴러갔으며...

 

6. 행복

 

누군가 행복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누군가 슬퍼지고 있었고

 

7.

 

잘려 나간 두 귀는 누워서 생각을 한다

신을,

본인은 꿈쩍하지 않으면서 남들만 운동시키는

나태하고 꾀바른

부동의 원동자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빗소리에 잠이 깨

이불을 차고

옥상에 널어 둔 빨래들을 걷으러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신은

세계를 향해 뛰어가 젖은 빨래들을

휙휙 걷었다 계단을

내려오며 런닝구 한 장을

떨어뜨린 것이 그의 유일한 죄일 뿐

 

*

 

귀 한 짝을 삼킨 개가 지나가는 한낮이었다

현재 살고 계시는 주소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처럼 멍청한

바람이 거기에도 불었고

 

나는 약간 죽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어느 정도의 보이는 상처가 있어야 했다

 

문보영

 

 

산책

 

거리 한복판이다 사랑하는 사람 S에게 몹쓸 소리를 들은 Z의 두 귀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지나가던 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Z의 두 귀를 주워 먹었다 Z의 두 귀는 Z보다 먼저 죽어 천국에 도착했다 동시에 귀의 몸은 배 속에 남았으므로 Z는 개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평생 들어야 했다

 

흥미로운 발상이다.

애인에게 몹쓸 소리를 들으면 두 귀가 떨어진다.

 

귀의 영혼은 죽어서 천국에 가고

귀의 몸은 개의 뱃속에 남아서 현실 세계의 소리를 듣는다.

 

귀의 영혼이 천국에서 경험을 하고,

귀의 몸은 지상에서 경험을 한다.

 

그리고 Z는 사랑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한다.

 

나는 약간 죽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어느 정도의 보이는 상처가 있어야 했다

 

Z는 실연 혹은 깊은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데 (아파서 죽어가고 있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이를 증명해야 하는데

두 귀가 나가떨어졌기 때문에 모두가 Z를 격려해줄 것이다.

 

 

가끔 술자리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들리는 경우가 있다.

 

어느 자리에서는 서로가 더 상처가 많다고 싸우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래서 상처가 많다, 나는 저래서 아픔이 깊다, 뭐 이런 식이다.

 

누가 누가 더 상처가 많고, 더 고통스러운가, 내기를 한다.

끝을 보자고 싸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모두가 다 아프기 때문이다.

위로받고 격려받기 위해서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증명한다.

두 귀가 나가떨어졌으면 윈win이다.

 

 

이 시는 사랑의 상처를 위트와 유머로 승화한다.

재밌고, 슬프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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