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황유원 <루마니아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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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황유원 <루마니아 풍습>

by 브린니 2022. 7. 10.

루마니아 풍습

 

 

루마니아 사람들은 죽기 전 누군가에게

이불과 베개와 담요를 물려준다고 한다

골고루 밴 살냄새로 푹 익어 가는 침구류

단단히 개어 놓고 조금 울다가

그대로 간다는 풍습

 

죽은 이의 침구류를 물려받은 사람은

팔자에 없던 불면까지 물려받게 된다고 한다

꼭 루마니아 사람이 아니더라도

죽은 이가 꾸다 버리고 간 꿈 냄샐 맡다 보면

너무 커져 버린 이불을, 이내 감당할 수 없는 밤은 오고

이불 속에 불러들일 사람을 찾아 낯선 꿈 언저리를

간절히 떠돌게 된다는 소문

 

누구나 다 전생을 후생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다, 물려줘선 안 될 것까지

그러므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이들 중 누군가는 분명

먼저 이불 속에 묻히고

 

이제는 몇 사람이나 품었을지 모를

거의 사람의 냄새 풍기기 시작한 침구류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혼자서 이불을 덮고 잠드는 사람의 어둠

그걸 모두들 물려받는다고 한다

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

그걸 아무도 모른다

 

 

황유원

 

 

산책

 

베개나 이불 등 잠자리 물건들이야말로 한 인간의 삶에 가장 기본적이고, 내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침구류를 사용하던 사람이 죽은 뒤 그것을 물려받는 사람이 있다니.

 

한 사람의 내밀한 것, 잠 속의 꿈까지 물려받는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다.

 

죽은 이가 꾸다 버리고 간 꿈 냄샐 맡다 보면

 

죽은 이의 꿈을 이어받아 꾸게 될 것이다.

 

꿈이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일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어떤 공포나

매우 큰 고통일 수도 있다.

 

꿈이 연결된다면 이 민족의 집단 무의식은 동일성을 띨 것이다.

 

그런데 나의 꿈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과연 기분 좋은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들을 모두들 물려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대개 죽은 사람들의 물건을 불에 태워 없애버린다.

우리는 애도를 일찍 끝낸다.

 

그 사람이 살아 있었던 것은 역사적 기록으로 묻힌다.

3일장이 끝나면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간다.

 

죽은 사람은 49, 1주기 등 기념일에 되살아나지만 다음날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루마니아는 애도를 끝내지 않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이불과 베개 들은 다른 사람에 물려주면서

자신의 꿈마저 그 사람에게 떠넘긴다.

 

유산을 받은 사람은 불면에 시달리거나 죽은 사람의 꿈속에서 헤맨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왜 죽은 사람을 붙들고 사는 것일까.

왜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것들까지 물려받고 힘겨워 하는 것일까.

 

과연 나의 생은 이전에 산 사람의 생을 이어가는 것일까.

왜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삶의 한 부분을 차지 하고 남아 있는 것일까.

죽음이 삶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것일까.

 

인간은 개별적,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관계적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려는 것일까.

 

그렇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가 아니며 나는 곧 우리이며 우리는 공동체이다.

우리라는 공동체는 같은 꿈을 꾸는 존재이다?

 

루마니아인들은 동상이몽이 아니라 동상동몽이다.

 

죽은 사람이 죽지 않고, 산 사람에게 끝없이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루마니아는 드라큘라의 나라인가?


그런데 이런 풍습이 진짜 루마니아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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