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찰스 부코스키 <지옥은 닫힌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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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찰스 부코스키 <지옥은 닫힌 문이다>

by 브린니 2022. 7. 2.

지옥은 닫힌 문이다

 

 

배를 곯고 살 때도

나는 출판사의 거절 통지에 개의치 않았다.

편집자들이 참 멍청하구나

생각하고는

계속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래도 그렇게 행동으로 거절해 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최악은 텅 빈

우편함이었다.

 

마음이 약해지거나 기대를 한 적이

있었다면

거절한 편집자를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정도랄까.

남자든 여자든 그 사람의 얼굴

차림새, 방을 건너오는

걸음걸이, 목소리

눈에 담긴 표정을 보고 싶었다……

딱 한 사람만이라도

딱 한 번만이라도.

 

알다시피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나를 변변찮다 말하는

종이 한 장뿐이라면

편집자를

신의 반열에 오른

존재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 때는

지옥은 닫힌 문이다

가끔 문 열쇠 구멍으로

그 너머가 얼핏

보이는.

젊든 늙었든, 선량하든 악하든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 가는 것은

없다.

 

 

찰스 부코스키

 

 

산책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 때는

 

예술을 한답시고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예술가는 한순간에 백수가 된다.

배를 곯을 때가 많다.

 

단순히 배를 곯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배고픔에 굴복하는 것이

배고픔 때문에 인생이 비참해지는 것이 문제다.

 

시를 쓰기 위해 폐가에 살면서 텃밭에 채소를 심고 기르면서

간신히 먹고사는 시인도 있다.

 

그렇게 사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뿐만 아니라 끈기도 필요하다.

누군가 왜 이렇게 사느냐고 비난하면 그것을 견디는 힘도 필요하다.

남 눈치 안 보는 대범함도 필요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손을 벌리거나 하는 일을 자제할 수 있는

놀라운 절제력도 필요하다.

 

급기야 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굶어 죽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

 

죽기 전에 자기의 인생이 비참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거나(이것도 용기다)

인정하지 않는,

비참하다고 느끼지 않고, 어쩌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미친 정신도 필요하다.

 

고흐가 결국 미쳤듯이 미치는 것도 필요하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 때는

지옥은 닫힌 문이다

 

이 시의 가장 독보적인 부분은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 때

지옥을 닫힌 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왜 지옥이 닫힌 문일까.

오히려 배고파서 죽을 지경이면 지옥이 활짝 열리지 않을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존의 기본인 먹는 것!

이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정말 지옥을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지옥은 닫힌 문이다

가끔 문 열쇠 구멍으로

그 너머가 얼핏

보이는.

 

그런데 지옥은 닫혀 있고, 겨우 열쇠 구멍으로 그 너머가 보일 뿐이다.

왜 그럴까.

 

여기서 지옥이란 무엇을 뜻할까.

 

이 시에서 지옥이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서 맛보는 지옥이다.

 

그런데 잠깐 열쇠 구멍으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 다른 것의 이름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지옥에는 내 작품을 거절한 편집자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옥이란 출판사나 기성문단 등 기존의 예술권력집단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지옥에 들어가려고 책을 출판하려는 것일까.

 

이 시는 이중겹에 싸여 있다.

하나는 예술을 한답시고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배를 곯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을 하는 것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출판을 거절당하면 지옥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이도저도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지옥을 경험하는 것인데

출판조차 못하면 지옥에 갈 수 있는 길이 막히는 것이다.

 

그래서,

 

젊든 늙었든, 선량하든 악하든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 가는 것은

없다.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며

출판을 못하는 것은 지옥을 닫힌 문틈을 엿보는 것이 될 뿐이다.

 

제대로 지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옥을 문을 열어야 한다.

즉 출판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예술을 한다는 게 배를 곯는 일인데

배를 곯아도 온전히 지옥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게 더 낫다.

 

이 시는 기막힌 역설이다.

 

작가는 죽어가는 존재인데 배고픔 때문에 기아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다.

아주 힘겹게.

 

그의 투쟁은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예술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것에 대한 투쟁이다.

예컨대 편집자를 상대로.

 

편집자가 누구인가.

작가가 아닌데도 작가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신이나 악마에 가깝다.

 

그래서 편집자가 사는 곳이 지옥이다.

그 지옥은 닫혀 있다.

 

그래서 지옥에 들어갈 수 없는 작가는 힘겹게 죽어가고 있다.

 

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우리 각자에겐 법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지만 언제나 닫혀 있다.

그 문은 오직 한 사람 나 자신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동시에 그 문은 오직 나만 들어갈 수 없다.

나를 위한 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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