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지아 <라보나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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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지아 <라보나 킥>

by 브린니 2022. 6. 29.

라보나 킥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록과 승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유 있는 준비와 광고는 시민들을 열광시키고 정신을 빼앗는다 스포츠의 목적은 다수의 건강이 아니며 현실을 망각하는 것

 

미디어를 통해 휴식을 얻고 싶은 사람은 통신이 고장난 상태를 참을 수 없고, 급기야 상담원은 모델명을 불러달라고 한다

 

티브이 뒷면 낡은 기호들을 더듬더듬 불러

부속품은 단종되었다고 한다 흑백과 잡음이 섞인 뇌속을 아무리 들춰봐도 응원은 들리지 않으며

 

경기를 시작한다

불안에는 공이 필요하고

불만에는 선수가 필요하다

 

밤을 견디려면 스포츠를 잘 봐야 하고 맥주를 마시다 잠이 들고 꿈에서 만난 사람을 현실에서 다시 볼 때

 

이상한 훈련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끝나면 진짜가 시작되는데

 

상대가 차가운 시멘트라면

나는 바닥에 얼굴을 갈아 빛나는 루프탑에서

폭발하면 안 되니까, 나는 마시고 취할 것이다

 

"지난날의 투쟁과 최선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어" 부엌에서 쇠 국자와 국가 별들이 썩은 이로 한꺼번에 떠들던데, 환영에게 보고 싶은 마음이란

 

겨울이 내 유년 시절을 다 휘저었지

나는 미래에서 제외되지 않으려고 숫자 쓰는 일을 한다

 

보호받으려고, 구별하려고, 남기는 인간들의 행적이 내 정신에 코드를 새겨 넣는 지랄을 진리라고 부를 수 있다 아울러 스포츠 중개자의 에너지는 일반적인 해석일 뿐이다

 

 

이지아

 

 

산책

 

스포츠의 목적은 다수의 건강이 아니며 현실을 망각하는 것

 

그래도 좋다.

아니, 그래서 좋다.

 

스포츠에 열광한다.

그 시간 동안 현실을 망각할 수 있으니까.

 

손흥민이 뛰는 축구 경기를 보려고 밤새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 430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설레고 흥분된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면 더욱 심장이 뛴다.

신경을 바짝 쓰면 배고프니까 야식을 집어넣는다.

 

스포츠는 건강을 헤친다.

 

그래도 좋다. 건강 걱정을 잊을 수 있으니까.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으면 건강 따위는 쉽게 잊으니까.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나 부부관계의 어려움, 자식들의 교육 문제 따위를 다 잊을 수 있으니까.

밤새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불면의 밤도 사라지니까.

직장에서의 무력감도 새벽 축구 중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으니까.

 

라보나 킥

 

 

운동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스포츠는 언제나 남이 하는 것이다.

 

스포츠는 운동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우리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스포츠를 구경하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대신 즐기는 것!

언제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일 뿐이므로.

 

손흥민의 득점왕 등극을

나의 판매왕 등극으로 여기며

손흥민의 뛰어난 성적을

나의 실적으로 여기며

 

감정이입을 100%하면서

현실을 환상으로 교환하는 법!

 

스포츠, 즐겨라!

세상은 현실을 망각하는 자의 것이다.

 

다만 즐기면 즐길수록 피곤하고 지치고 무력하다.

(모든 쾌락에는 약간의 부작용이 따라온다?)

 

 

밤을 견디려면 스포츠를 잘 봐야 하고 맥주를 마시다 잠이 들고 꿈에서 만난 사람을 현실에서 다시 볼 때

 

이상한 훈련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끝나면 진짜가 시작되는데

 

무서운 것은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진짜가 시작된다는 것!

 

하지만 진짜란 무엇인가?

직장에서 졸고 있는 열등한 내가 아니라

스포츠에 열광하면 축잘알(축구잘아는사람)을 뽐내는 나를 진짜로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축구를 잘 하는 게 아니라

축구를 잘 아는 것.

(축구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워들은 사람)

 

그것이 행복이다?

남의 스포츠를 내 것으로 여기는 것!

 

현대인으로 산다는 것은 아마도 남과 같아지거나

남과 같아지기를 욕망하거나

남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잊는 것?

 

 

사실 진정한 공동체란 내가 남과 다를 수 있으나

인간으로서 내가 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텐데.

 

다르면서 다르지 않다는 것.

같지만 완전히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결국 우리가 완전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둘 다

그러나 각각 따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스포츠가 우리의 건강을 헤치더라도)

 

새벽에 손흥민이 펼치는 축구 경기를 보며

치맥을 하는 시간을 포기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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