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여성민 <슬픔이 오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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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여성민 <슬픔이 오는 쪽>

by 브린니 2022. 6. 26.

슬픔이 오는 쪽

 

 

프랑크푸르트로 간다 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오고 프랑크푸르트의 밤은 푸르다

 

밤은 오므린 손을 펴듯 온다 너는 슬픔이 오는 쪽으로 눕는다고 말한다 나는 베이징으로 간다 베이징을 지나 장마전선이 북상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침이 오기 전에 새들은 떠났다 쫓겨가는 것은 무엇이나 아름답다 나는 벌써 찬란하다 너의 첫 논문은 재의 도시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룩셈부르크로 간다

 

하나의 심장이 멈출 때 하나의 별은 태어나지 돌은 하나의 속도 바람은 어제에 속한다

 

나는 폼페이로 간다 타인들의 타락을 사랑했던 도시 고린도로 간다 등에서는 열 개의 별이 타오르고 허리에선 두 개의 바람이 흩어지지 나는 시카고로 간다

 

별들은 장외로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다 스타디움 뒤에서 실밥이 선명한 별을 주우며 출루 없는 하루를 견딜 때 석양보다 생선의 죽은 빛이 먼저 오는 오사카에서 여자를 안을 때

 

어쩌면 권태로운 방향 같기도 하다 심장은 여태 자전하고 있는지 별과 별 사이를 건너본 일이 있는지 너는 묻는다 밤은 거의 숲을 빠져나왔다

 

나는 베를린으로 간다 너를 지나 밤의 숲이 오는 쪽, 나는 더블린으로 간다

 

 

여성민

 

 

산책

 

언제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즐겁고 행복할 때 아니면 아프고 슬플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행복할 때는 아마도 지금 여기를 즐기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감행하는 적절한 때는 아마도 슬플 때!

 

슬픔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슬픔은 외부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마음 한복판에서 시작하는가?

 

불행이 외부로부터 시작된다면

불행을 당한 사람은 마음 한복판에 구멍이 뚫리고

거기서 슬픔이 솟아난다.

눈물이 흘러넘친다.

 

내 속에 그토록 많은 슬픔이 그토록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싶을 정도로 홍수가 터진다.

 

이런 슬픔을 피해

슬픔의 방향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더 먼 곳으로 떠남으로써

슬픔의 장소를 바꾸는 것이다.

 

슬픔의 장소를 바꾸면 슬픔의 질량이 덜어질지도 모른다.

 

프랑크푸르트, 베이징, 룩셈부르크, 폼페이, 고린도, 룩셈부르크, 시카고, 오사카, 베를린, 더블린으로 자꾸만 슬픔의 장소를 바꾼다.

 

 

별을 따라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달의 흐름을 따라?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즉흥적으로?

 

어떻게든 슬픔을 덜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슬픔이 바닥날 때까지.

 

 

슬픔의 시간은 훤한 대낮일 수 없다.

슬픔은 어둠 가득한 밤의 시간이다.

 

밤이라는 공간일 수도 있다.

 

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온다. 그리고 여러 개의 도시를 건너

 

밤은 거의 숲을 빠져나왔다

 

밤이 끝나면 여행도 끝나고 슬픔도 멈춘다?

 

나는 베를린으로 간다 너를 지나 밤의 숲이 오는 쪽, 나는 더블린으로 간다

 

아직 밤은, 슬픔은 다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를 지나간다.

 

너를 지나면

슬픔이나 밤이 그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슬픔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일 테다.

 

사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슬프고, 아프다.

 

그래서 어떤 장소를 떠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떠난다.

사람으로부터 떠난다.

 

더욱이 실연을 당한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떠난 사람’으로부터 떠난다.

 

그 사람이 없는데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장소를 떠난다.

그 슬픔의 장소를 떠난다.

 

슬픔 그 자체로부터 도망친다.

슬픔 이전의 행복으로부터 쫓겨난다.

 

고행, 익숙한 것, 행복 등으로부터의 추방

 

쫓겨가는 것은 무엇이나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벌써 찬란하다

 

도망이든 추방이든

어쩌면

여행은 사람을 찬란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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