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송승언 <숲 속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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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송승언 <숲 속의 의자>

by 브린니 2022. 6. 13.

숲 속의 의자

 

 

그 의자는 이제 숲 속에 있다 숲 속에는 생활을 잃은 노인도 숨어든다

 

아침이면 의자에 앉아 숲의 저편을 본다 저기 보이는 참나무 참나무 그리고 참나무

 

그 의자는 등받이와 팔걸이도 없어서 노인은 저녁으로 등을 구부린다

 

비가 오면 숲이 두터워진다 노인은 오두막으로 숨어들고

의자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해체된다

 

가끔은 숲 속에 톱질 소리가 들린다 노인이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다

숲 속에는 노인이 죽어도 무덤도 없고 의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송승언

 

 

산책

 

전원에 집을 짓고 사는 것과

숲 한복판 오두막에서 사는 것은 얼마나 다를까.

 

숲은 과연 사람에게 허락된 곳일까.

숲은 삶은 품는 곳일까.

 

숲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을 수 있다.

헨젤과 그레텔을 비롯한 많은 동화속 주인공들이 길을 잃었다.

 

숲은 정령들의 세계이며

사람들을 뱉어내거나 삼켜버리는 곳이다.

 

숲은 신령하고

신령한 나무들이 무리를 이루며 살고 있다.

 

참나무, 참나무, 참나무의 숲도 있고,

삼나무, 삼나무, 삼나무의 숲도 있다.

자작나무 숲도 있다.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모두 모여 있는 숲도 있다.

 

숲이란 단어만 들어도 신선한 바람과 공기를 느낄 수 있다.

푸르고 녹색 빛이 든다.

물든다.

 

 

숲에서는 정령의 아이들이 살 것 같다.

아니면 신령한 노인이 산다.

마녀나 요정도 살고 있다.

동물들, 야수들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살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도시에 산다.

 

숲은 소풍갈 때 들르는 곳이다.

간혹 캠핑을 하거나.

 

숲은 꿈의 공간이다.

숲을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활짝 펼쳐서 그 속에 들어가 낮잠을 자면 어떨까.

 

 

숲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누가 맨처음 나무를 깎아서 의자를 만들었을까.

 

등받이도, 팔걸이도 없는 앉은뱅이 의자.

그래도 다리는 4개 있는 의자.

 

동물처럼 다리가 4개인 의자.

사람이 거기 앉을 수 있는 의자.

 

좀 앉아 있으면 허리가 저린 의자.

일어서서 허리를 쭉 폈다가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고 다시 앉는 의자.

 

풀밭에 그냥 앉으면 전염병에 걸릴 수 있기에

가능하면 의자에 앉아야 한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것을 보거나

숲이 노을에 물드는 것을 지켜보기에 아주 그만인 의자.

숲의 나무들 중 키가 가장 작은 의자.

숲의 나무들 중 살아 있지 않고 죽은 유일한 나무.

하지만 분명 나무인 의자.

 

숲의 나무들이 비가 오면 물을 마시며 키가 크지만

비가 오면 점점 해체되는 의자.

 

하지만 노인이 죽어도 그 자리를 지키는 의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나 죽어서 다른 모습을 한 의자.

의자. 의자. 한때는 나무였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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