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안태운 <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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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안태운 <풍등>

by 브린니 2022. 6. 14.

풍등

 

 

안쓰럽다고 생각했어요. 도서관 안으로 새가 들어와 있다면. 들어와 나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퍼덕거린다면. 시간이 흘러 바닥에서 죽은 듯 있다면. 나는 안쓰러워요. 하지만 안쓰러워하는 것과 인간화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아닌 걸 인간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다만 안쓰러워하며 행동할 수는 있다고. 어느 날 나는 새를 통역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뻔하다가 흠칫 놀라서 도서관을 나섰습니다. 두 발로 일어나 나는 다만 하나의 인간이니 교정을 배회하며 미래를 계획했죠. 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군요. 미래는 절망적이군요. 이제 미래를 생각하는 건 터무니 없이 지겨워. 나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습니다. 안쓰러워하던 감정은 멀리 날아가버렸고 나는 하릴없이 불투명한 미래만 바라보는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게 화가 났어요. 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었는데. 그렇게 교정을 벗어났습니다. 계속 걸어가면서 인간의 형상을 본뜬 것들과 어떤 형상이든 인간처럼 만들어진 것들을 주시하기도 했고 다짐으로 훗날을 실현하려는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나는 내 눈을 피해 다녔어요. 나는 오늘도 내 인간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안태운

 

 

산책

 

시간이 흘러 바닥에서 죽은 듯 있다면.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읽으면

시간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죽은 듯이 있다

즉 시간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죽은 듯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원래 이 구절은

새가 도서관에 들어와 나가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

도서관 바닥에 죽은 듯이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주어가 아니라 새가 주어이다.

시간이 흘러서는 부사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만 떼어놓으면 시간이 죽은 듯 바닥에 누워 있다가 된다.

시간은 죽지 않는다.

누군가 종말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간이 죽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종말이 인간의 종말이나 세계의 종말, 지구의 종말일 수 있지만

시간 그 자체의 종말은 아닐 것이다.

 

시간은 종말 이후에도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다.

영원 속에서 시간은 뒤돌아보지 않고 갈 것이다.

 

시간은 24시간 하루를 반복하지만

오늘을 반복하지만 언제나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시간이 흘러내려서 바닥에 죽은 듯이 눕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내려 바닥에 눕는다는 상상은 얼마나 기막힌가.

(살바도르 달리의 흘러내리는 시계를 떠올리게 된다.)

 

 

이 시의 제목이 왜 풍등인지는 알 수 없다.

 

풍등이란 등에 불을 넣어 하늘 높이 띄우는 일종의 열기구이다.

거기에 소원을 담아 하늘에 닿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풍등은 오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일, 미래를 향한 것이다.

소원은 언제나 미래에 완성되는 것이니까.

 

 

시인은 도서관 안에서 잘못 들어온 새를 본다.

새는 나갈 길을 몰라 헤매다

바닥에 떨어진다.

 

어쩌면 시인도 자신의 운명?을 새와 같이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앞을 알 수 없고, 나갈 길이 막막한

 

도서관을 나와서도 자신의 미래가 별로 밝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다.

 

훗날을 실현하려는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인간에게 미래란 결국 어떤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래란 특정한 어느 지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저 오늘이 아니지만 곧 다가올 시간이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시간이면서

몇 년 후, 몇 달 후, 하고 한정한다.

그렇게 꿈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한정된 시간 안에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좌절하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을 미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래는 지속된다는 말이 있다.

미래는 결코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 시간이 아니다.

 

미래는 영원 속의 한 지점일 수도 있지만

미래는 그저 영원으로 가는 지속하는 시간일 뿐이다.

 

미래가 지속하는 그동안 삶은 시작되고 끝난다.

그 삶을 오늘 하루 충실하게 사는 것 외에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는 오늘도 내 인간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인생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는 것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시간.

 

그것은 이미 결정된 시간일 수도 있고,

자신이 만들어 가는 시간일 수도 있다.

 

몇 살까지 살든지 그 주어진 시간 동안

자신이 그 시간을 일구는 것이다.

 

그 시간은 매 초, 매 분, 매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 이런 식으로 나뉘어져 있을 수도 있고,

그저 시간이라는 것 자체로 진행될 수도 있다.

 

시간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것이지만

각 사람이 시간을 쓰는 방식에 따라 그 길이가 달라질 수 있다.

 

또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처음 사랑에 연인에게는 시간이 너무 빠르지만

권태기에 있는 사람들에겐 몇 초가 정말 영원같다.

 

시간은 마법을 부릴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마법을 부리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 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시간에 손을 대는 것은 사람이다.

 

시간을 손을 탄다.

시간은 생명을 줄 수도

바닥에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시간을 죽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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